오픈형 SW 사업에만 10여년 몸담아온 모 벤처기업 CEO는 5년전 한∙중 SW관련 포럼행사 참석 시 중국 공무원들의 전문성에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사업한 지 10년도 넘는 국내 SW기업 CEO는 물론 저명한 국내 대학교수조차도 글로벌 트렌드와 산업계를 꿰뚫고 있는 중국 공무원들의 수준에 “사회주의 체제 공무원이 어떻게 우리 나라 공무원보다 수준이 높을까”라며 탄식을 쏟아냈다.
국내 SW업계 CEO들은 해당 중국 공무원이 SW업무만 10여년째 담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다자간 무역환경과 현지 진출과 관련해 중국 정부의 SW정책이 글로벌 트렌드를 앞질러가는 데는 거꾸로 공공 부분의 강력한 지원 덕분임을 벤처산업계는 이미 오래 전부터 절감하고 있다.
중국이 게임산업, 통신장비에 이어 핀테크 등 글로벌 질서를 석권한 것 역시 이런 미국 유학파 엘리트 중국 공무원들의 엄청난 전문성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시행한 지 7년째 접어들고 있는 공무원 순환보직제. 공공부문의 부정부패를 차단하기 위해 2,3년 주기로 보직을 바꾸는 공공부문 순환보직제가 행정력의 비전문성과 비효율을 고착화하면서 부정부패보다 더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다는 분석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서로 믿지 못해 지불하는 불신비용이 대한민국의 경쟁력을 갉아먹고 사회 전체의 효율을 떨어뜨리는 최악의 병폐라는 지적이다. 피치원은 대한민국을 바꾸자 8번째 아젠다로 불신비용을 걷어낼 것으로 제안한다. 믿지 못하는 사회, 불신하는 사회, 그로 인해 발생하는 간접비용은 천문학적인 규모에 이른다. 불신이 낳은 비효율과 엉터리정책으로 인한 예산낭비 또한 엄청나다.
■ 삼성전자와 네이버 소프트파워의 차이는 불신과 신뢰의 차이
지난해 7월, 삼성전자는 전 계열사에 내보낸“삼성 SW 경쟁력백서(白書)’란 20분짜리 사내 방송을 통해 삼성 SW인력이 구글 입사시험을 보면 1~2%만 입사가 가능한 수준이며 구글 수준의 문제해결능력을 갖춘 SW인재는 상위 6%에 불과하다고 강하게 질타, 화제를 불러 일으킨 바 있다.
“버그가 몇 개 나왔죠? 몇 개를 수정한 거죠?”
2015년말 해체된 삼성전자 MSC(Media Solution Center)가 당시 소프트웨어 개발자를 평가하는 방식은 제조업 삼성전자가 시행하는 KPI 평가 포맷 그대로였다. 몇 개를 개발했고, 버그를 몇 개 잡았고 하는 게 바로 SW 개발자를 평가하는 방식이다.
삼성전자 고동진 사장이 지난해 2월,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삼성의 수직적인 문화가 혁신과 신선한 사고를 막는다”고 발언, 주목을 끌었지만, 삼성전자의 취약한 소프트파워는 불신에서 출발한 왜곡된 평가시스템이 근본 원인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소프트웨어는 사실 팀 단위별로 자유분방한 구조여야 성과가 나거든요. 그런데 관리와 평가를 기존 제조업 방식대로 해버리니 결과가 뻔하죠. 삼성문화에선 SW 개발성과를 기대하기 쉽지 않습니다. 심지어 평가를 좋게 받으려고 일부러 버그를 더 많이 만들어놓고 이를 개선 후 KPI를 받는 예도 있어요”
“사실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은 자유분방해야 하거든요, 출퇴근도 자유롭고 업무시간에도 게임도 하고 놀기도 하고 해야 하는 데, 감시와 관리의 삼성 스타일에선 쉽지 않죠”
판교 정자동 네이버 그린팩토리 사옥. 네이버에 근무하는 프로그래머와 디자이너 수는 전체 인력의 70%수준인 1600여명. 이들은 대부분 대형 SI업체, 하청업체 경력자들이다. 네이버 개발문화의 가장 강력한 파워는 불신이 아닌 신뢰를 바탕으로 국내 최고수준의 개발자들을 빨아들이는 흡인력이다.
네이버 소프트파워는 이제 구글의 자율주행차에 도전장을 던질 정도로 파워풀하다. 네이버의 개발자 흡인력은 어디서 나올까? 바로 개발자들이 가장 원하는, 이른바 불신이 아닌, ‘개발에만 집중하고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을 철저히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다.
네이버는 불신하지 않는다. 네이버에는 대기업처럼 팀장이 업무를 배당하고 개발자들에게 매일 매일 무엇을 개발했는지, 일일,주간단위로 업무일지를 쓰도록 하는 톱다운 방식 자체가 없다. 개발자들 자신이 하고자 하는 업무와 일의 양을 스스로 정하도록 한다.
프로젝트가 만들어지면 개발자 업무게시판을 통해 새롭게 기획된 업무 내용을 공고, 지원자를 받는 형태로 진행한다. 바로 구글 방식이다. 당연히 출퇴근 제약 없이 자유롭게 일한다. 불신에 바탕을 둔 출퇴근 체크 시스템은 아예 없다. 일일 업무 일지를 작성할 필요도 없고, 출근하든 채택근무를 하던 어떤 제약도 없다. 다만 소스통합관리시스템에 체크인하는 업무방식이다.
다만 소스통합관리시스템에 체크인, 자신이 무슨 소스코드를 개발했는지 설명만 달아놓으면 된다. 네이버 개발자들은 평균 주간 50시간을 넘게 일하지만 모두 행복해한다. 바로 불신이 아닌 신뢰를 바탕으로 한 자발적인 문화 때문이다.
■ 공무원 순환보직제 바로 폐기하자, 공무원 전문가를 키우자
공직사회 부정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도입한 공무원 순환보직제 제도가 바로 불신으로 인해 더 큰 것을 잃은 전형적인 ‘구더기 무서워 장독 깨는 정책’이다. 전문가들은 한 자리에서 붙박이로 근무, 유착형 부정∙비리가 발생하는 폐해보다 전문성이 떨어져 수조원, 수천억원, 수백억원대 국가 예산이 낭비되고 헛되이 쓰이는 부작용이 더 심각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모 부처 산업육성 담당과장. 수백억원대 신규 예산집행을 위해 우선 정책평가위원회를 구성한다. 이에 앞서 정책예산 수립과 관련해 이를 평가해줄 심사위원회를 먼저 구성하고 정책 집행 전에는 공청회를 여는 것도 잊지 않는다.
위원회 멤버는 늘 업무를 해온 부처 정책을 잘 이해하는 교수와 산하기관 전문가그룹으로 채워진다. 공청회를 하고 심사위원회를 구성해 심의하고 평가위원회를 여는 등의 절차를 거친다고 담당 과∙국장이 애초 생각한 방향이 바뀐 것은 한 번도 없다.
하지만 향후 감사원 감사 및 예산지원에서 탈락한 단체, 기업이 투서 등 문제 제기할 경우를 대비, 시비논란에서 벗어나기 위해 공청회, 심의위원회, 평가위원회 등 형식적인 ‘면피성 절차’를 끝도 없이 반복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정부정책은 늘 공청회와 심의위원회, 평가위원회 구성부터 시작된다는 우스갯 소리가 관가의 정설처럼 된 지 오래다.
공직사회의 전문성은 이미 발붙일 틈이 없다. 2,3년마다 자리가 바뀌는 데, 전문성을 쌓을 엄두는 물론 필요성도 못 느낀다. 공직자들은 늘 다음 인사철에 자신이 또 어떤 자리로 옮길지에만 관심을 쏟는 ‘인사철 업무 공백’이 일상화하고 있다.
정권과 장관이 바뀔 때마다, 수시로 자리를 옮기는 통에 공공부문은 온통 ‘철새뿐’, 전문가는 사라진 심각한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공무원 순환보직제의 가장 큰 부작용은 전문성이 결여돼 천문학적인 국가 예산이 철저한 검증과 제대로 된 정책효과 없이 마구잡이로 헛돈 날리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담당 공무원이 바뀔 때마다 새로 배워 정책을 펼치다 보니 산하 정부출연연구소에 휘둘려 매년 수천억원대 예산이 글로벌 트렌드에 뒤지거나, 시장 친화적이지 않은 엉터리 국책과제가 비일비재하다.
국내 정부출연 연구기관 중 가장 많은 연간 7000억원대 예산을 집행하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슈퍼컴퓨터 국산화 등 엉터리 정책과제로 수백억원씩의 국가 예산을 마구잡이로 집행하고 있다.
최근 미래부가 인공지능 개발을 위해 연구소를 만들고 수백억원의 예산을 집행하는 식의 정책 역시 전문성이 없는 담당 공무원이 산하 단체장과 국가산 따먹는 데 일가견이 있는 출연연의 현란한 정책논리에 휘둘린 결과다.
[참여와 혁신이 지난해 6월 행정부 공무원노동조합원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이젠 모든 부처 분야별로 담당 공무원이 최소 7년이상 근무하도록 하는 공무원 전문가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유착으로 인한 부정∙부패의 경우 저질러도 100억원이상 빼돌리기 힘들다. 철저한 견제와 감시시스템을 통해 부정∙비리를 감시하면 된다.
불신에서 출발, 공무원의 전문성을 차단하는 순환보직제는 바로 폐기해야 한다. 국방부, 복지부, 교육부 등 부처별 천문학적인 비리와 부실 정책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고 있다. 삼성출신 이근면 인사혁신처장 역시 공무원 전문성보다는 거꾸로 성과연봉제 도입에 집착하다 도중하차한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 불신의 비용 걷어내 국가시스템 효율을 극대화하자
오프라인 기업에는 자금운영과 관련 재무팀과 회계팀 2개 부서가 있는 경우가 흔하다. 불신이 낳은 폐단이다. 자금업무를 담당하는 부서가 2개인 것은 서로 감시하자는 취지다. 투명한 경영진의 회사는 나눠져 있지 않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처럼 대주주 스스로 배임과 횡령이 일상화 돼있는 기업의 경우에는 이렇듯 불신에서 출발한 중복된 조직을 오래전부터 운영 중이다. 못 믿으니 서로 감시하라는 의미다.
우리 사회 곳곳에 퍼져있는 불신의 비용을 걷어내야 한다. 부정부패가 만연한 공공기관도 최태원 회장처럼 여전히 심각한 모럴해저드를 보여주는 일그러진 탐욕이 존재하는 한 우리 사회의 불신비용은 지속적으로 클 수밖에 없다.
누구나 공적인 장소에서 공공 생활에 필요한 애티켓과 질서를 지키듯 공공질서를 존중하는 문화가 더욱 퍼져야 한다. 네거티브에서 이젠 포지티브하게 사회 전반에 퍼진 불신의 벽을 걷어내야 한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불신으로 인해 중복된 조직과 시스템이 우리 사회에 강요하는 비용은 엄청나고 그러한 불신비용이 국가시스템의 경쟁력과 효율을 떨어뜨리는 주범으로 분석된다. 2017년 대한민국, 이제 불신의 비용을 걷어내고 공공, 민간 가릴 것 없이 창의성과 자발성, 뛰어난 전문성을 통해 국가경쟁력을 향상시키는 터닝포인트를 마련해야 한다.
무너진 윤리를 바로 세워 존중과 보편적 가치가 지배하는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한다. 이제 불신 비용을 걷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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