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부터 불어닥친 북한 4차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사드도입방안 검토에 이어 개성공단 폐쇄까지 한반도를 둘러싼 환경은 그야말로 신냉전체제와 진배없다. 새해 벽두부터 한반도는 굵직굵직한 이슈들로 글로벌 뉴스룸의 중심에 서 있다.
무엇이 문제일까? 대한민국을 옥죄는 이 암울한 답답함의 본질은 무엇일까?
박근혜 정부가 실패한 정권으로 역사에 기록될 공산이 커지고 있는 것은 몇 가지 중대한 시그널 때문이다.
현시점에서 가장 우려스런 대목은 바로 눈을 의심케 할 정도로 취약한 외교력이다. 현 정권에는 사실상 ‘외교가 없는’것과 마찬가지라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진단이다.
어찌 된 영문인지 현 정권은 미국이건 중국이건 일본이건, 쌍방 외교에서 늘 외교의 기본인 국가 실리를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실리를 뛰어넘는 빼어난 명분을 확보하는 것도 없다.
북한의 4차 핵실험 때만 해도 대통령이 나서서 “중국이 해줄 것으로 약속했고, 반드시 역할을 해줄 것으로 믿는다”며 대국민 담화까지 하며 밝혔거늘 중국 외교부 수장은 “중국은 북한 제재를 원지 않는다”며 한마디로 잘라냈다.
이에 보복이라도 하듯 곧바로 한미 간 사드도입방안 논의를 공식화한 것도 소득 없는 외교참패라는 게 외교가의 진단이다.
사드에 대해 중국과 러시아가 극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시점에 굳이 이렇게 빨리 사드도입문제를 공론화할 필요가 전혀 없었고, 사드를 도입하더라도 한 1, 2년 뜸을 들여도 전혀 문제가 없는 상황이라는 진단이다.
사드 자체가 그렇다고 핵실험과 핵탄두탑재 미사실 발사 자체를 억제할 가공의 선제적 군사장비도 아닌 마당에 굳이 중국, 러시아와의 외교 경제적 실리까지 잃어가며 성급히 공표할 이유가 없었다는 지적이다.
사드도입 가능성 여부 자체가 미국에 대한 좋은 외교카드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일찍 우리 스스로 패를 까보인 것 아니냐는 지적도 같은 맥락이다. 개성공단 폐쇄조치는 “대북확성기와 전단살포가 유일한 대응책이냐”는 여론의 따가운 지적에 압박을 느낀 현 정권이 너무 단기 속성으로 내놓은 패착에 가까운 카드로 분석된다.
개성공단 전면철수는 국가가 시스템으로 돌아간다면 쉽사리 나오기 힘든 의사결정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정권이 바뀌거나 새로운 통수권자가 등장해도 바뀔 수 없는 건 50년, 100년 앞을 내다보는 크고 장기적인 내셔널 프레임(국가가 취해야 할 틀)이다 .
그런 것 중 하나가 바로 통일아닌 가? 어떻게 하면 가장 저비용구조의 통일 스트럭처를 짤 것인지, 이를 위해 50년의 10년 단위별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하는 것들은 정권이 바뀌든, 통수권자가 바뀌든 불변으로 지켜야 한다.
정권이 무슨 성질나 화풀이처럼 행정이나 외교를 펼 수는 없는 것이다. 철저히 실리와 이익, 그리고 국가 대계 차원의 장기적 안목에서 따져보고 주판을 튕긴 후 실행해야 하는 거 아닌가?
나 홀로 의사 결정하는 독재경영자처럼, 아니면 정치적 이득이나 다른 속셈으로 이런 걸 마구 훼손하라고 누가 이 정권에 허락했다는 말인가?
이런 큰 내셔널 프레임을 훼손하는 일이 바로 역사에 나쁘게 기록돼 남는 게 아닐까 싶다. 이번 개성공단 폐쇄는 이런 측면에서 많은 걸 생각게 하는 대목이다.
실익이 없는 외교가 무슨 외교인가? 실익도 명분도, 더더구나 엄청난 자국 중소기업에 피해를 주는 게 무슨 외교인가? 청와대 스텝들과 부처 장관들이 이런 의사결정 구조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 점점 더 궁금해진다. 그들이 제대로 작동(역할을 충실히)했다면 이런 의사결정이 과연 나올까 싶어서다.
이미 중국은 사드도입에 따른 보복 차원의 무역압박이 시작될 조짐을 보이고 있고,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내 기업에 돌아갈 것이다. 또 무역수지로 이어질 것이다. 미국 역시 사드 도입 건을 포함해 군수와 외교적 전략 속에 대한민국을 중요한 무기수입국가로서의 지위를 잃지 않도록 몰아갈 것이다. 지금처럼 말이다.
현 정권 외교력의 가장 큰 아킬레스건은 어떤 밀고 당길 수 있는 협상 카드를 스스로 만들고 그 카드의 파워를 키울 수 있는 전략이 절대적으로 취약하다는 사실이다. 상대방에게 강하게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데 어떻게 협상이 될 것인가? 미국과 중국을 향한 현 정권의 짝사랑 외교전은 이미 여러 사례를 통해 드러난 바 있다.
미국이 일본 손을 들어주고, 중국이 북한 편을 들어도 어찌할 방도가 없는 것은 우리 스스로 이들 국가에 대한 밀고 당길만한 압박 카드가 없기 때문이다.
■ 매년 40조원을 쏟아붓는 국방예산, 역대 국방장관과 별들은 무엇을 했는 가?
사실 우리가 북한보다 15~20배 많은 국방예산을 써온 지도 벌써 30년 가까이 된다. 2000년대는 44배가 많았고, 2010년이후에는 31배나 많다.
2015년 국방예산만도 40조원이 넘었다. 10년 전인 2005년 20조원이던 국방예산이 딱 10년 만에 두 배로 늘었다. 미사일 방어체계와 육∙해∙공 장비개량에 12조4000억원 가량이 투입되는 데, 결국 사드를 포함해 이들 무기체계는 대부분 미국산으로 채워질 예정이다. 매년 반복되는 사이클이다.
여기에 한 해 1조원에 육박하는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등도 10년만에 국방예산이 2배로 뛴 요인들이다. 문제는 이렇듯 천문학적인 국방예산을 북한보다 매년 15배 이상 30년 가까이 쏟아붓고도 여전히 우리 스스로 북한의 행동과 군사적 도발에 대해 주도적으로 억제하고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점이다.
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 IISS) ‘The Military Balance 2014’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GDP대비 국방비비율(%)에서 2.6을 기록, 이스라엘(6.0), 미국(3.7), 러시아(3.1)에 이어 세계 4위를 기록했다. 우리나라는 군비경쟁 각축을 벌이고 있는 중국(1.2), 일본(1.0)보다도 높게 나타났다.
국민 1인당 국방비(달러)에서도 한국은 596달러를 기록, 이스라엘(1967), 미국(1896)에 이어 세계 세 번째로 많은 것으로 나타났으며, 심지어 러시아(478), 일본(401), 중국(83)에 비해서도 국민 1인당 부담하는 국방비가 많은 것으로 밝혀졌다.
세계에서 국방비지출규모가 GDP대비에서 4위, 국민 1인당 대비에서는 세계 3위를 기록할 만큼 우리는 천문학적인 세금을 국방비로 쏟아붓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우린 미국에 군사억제력을 의존하고 작전통제권을 위임하고 있다. 결국, 우리 스스로 ‘외교가 없다’는 최악의 평가에서 벗어나려면 이런 전쟁억제력을 끝없이 외부에 위탁하려는 ‘심리적 의존현상’ 에서 스스로 벗어나야 한다.
근 30년간 국방업무를 책임진 숱한 장관과 별들이 해먹은 국방비리와 비효율적인 예산 낭비, 매년 습관적으로 펼쳐온 미국식 전력증강사업의 폐해 아닌가?
이렇듯 천문학적인 국방예산을 쓰고도 전쟁억제력을 담보로 한 최소한의 외교적 파워도 제공하지 못한 직업군인과 국방산업계는 30년간 무엇을 했는가?
한 해 40조원의 세금을 쓰고도 달라진 것 아무것도 없다는 점이다. 국방비리를 줄여 1조원만 확보해 북한의 개방과 경제특구개발에 투입하며 북한에 대한 지배력을 확대했다면, 지금보다 훨씬 유리한 외교 질서를 확보할 수 있었을 것이란 분석은 그래서 더욱 설득력이 있다.
쏟아내는 외교 정책마다 실리를 잃고 북한은 더욱더 협상 파트너에서 멀어지는 작금의 질서는 엄청난 퇴보요 외교적 참패다.
북한이 몇 달 내 핵연료에서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다느니, 핵탄두 몇 기를 만들 수 있다느니, 그래서 미 본토를 직접 타격할 수 있다는 미국 언론의 연이은 보도를 정말 미국을 제외한 선진국들은 얼마나 믿을까?
지금의 북한 경제력과 GDP로 그것이 가능하고, 그런 대륙간 탄도미사일로 북한이 미국의 안보에 치명적 위협을 가할 수 있다고 서방세계는 정말 믿고 있을까?
현 정권 역시 정말 그렇게 믿고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다른 정치적 스케줄 때문에 그렇게 밀어붙이고 있다는 의혹을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결국, 뜨겁게 내리 쫴 옷을 벗게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계속 혹독하고 차가운 강풍 속에 꼭꼭 동여매게 해서는 평화나 통일의 길을 앞당기기 힘들지 않겠는가?
아직도 총선과 대선을 위해 이런 국가 백년대계를 허물고 역사에 오점을 남길 일들을 할 것인가? 이젠 우리 스스로 주도적인 억제력과 이를 기반으로 한 힘있는 외교력을 갖춰야 한다. 그렇게 할 수 있도록 국방예산과 투명하고 비리 없는 효율적인 집행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이스라엘이 미국의 도움이나 허락 없이 시끄러운 이웃들을 스스로 정리하고 제어하고 억제하는 것은 생존을 위한 절박함에서 출발한다. 바로 ‘외부 의존’이 아닌 자주적이고 주도적인 주권행사의 파워를 이스라엘은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미국과의 외교력에서조차 밀리지 않은 것은 이런 자주적인 국력 때문 아닌가?
우린 왜 매년 40조원을 국방비로 쏟아붓고도 이런가? 외교가 없는 대한민국.
원인도 해결책도 우리 내부에 있다. 언제까지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 강대국들만 애타게 바라보고, 눈치 보고, 탓만 할 것인가? 다음 정권에는 정말 외교가 있어야 한다. 진짜 외교력을 갖춰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