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 장남과 차남이 벌이는 ‘롯데그룹 경영권분쟁’ 추태가 전 국민의 눈쌀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양측 모두 부친인 신격호 총괄회장이 머무르는 롯데호텔 34층 집무실에 경호원을 배치, 94세의 고령인 부친을 서로 모시겠다며 옥신각신하는 낯뜨거운 풍경을 연출, 비판 여론이 쏟아지고 있다.
특히 거동이 불편하고 판단능력이 정상인지 의심스러워 보이는 고령의 부친을 경영권분쟁의 볼모로 잡고 있는 2세 오너들의 행태에 ‘도를 넘은 행위’라는 지적과 함께 실망한 소비자 사이에 ‘반(反) 롯데’ 정서가 빠르게 퍼지고 있다.
롯데그룹의 볼썽사나운 ‘94세 부친 볼모’ 사건은 재벌가 경영권 승계가 어떻게 이뤄져야 국민적 공감대와 함께 정당성을 인정받는지를 다시금 생각케 하는 동시에 편법 상속에 대한 논란에 불을 지피는 계기가 되고 있다.
대기업 경영권 승계에 대한 국민 여론이 따가운 것은 지분 상속과 함께 경영권 확보를 위한 편법과 불법, 그리고 과도한 절세와 계열사를 동원한 일감몰아주기식 재산불리기 등이 거의 관행처럼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 롯데家 혈투, 합법적 상속 타이밍을 놓친 신격호의 과욕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은 16일, 신 총괄회장이 머무르고 있는 롯데호텔 34층 신 총괄회장 집무실을 점거, 언론에 전격 공개했다. 집무실에 기자를 불러 노쇠한 신 총괄회장이 담요를 덮은 채 앉아있는 모습을 언론에 공개하는 초강수를 둔 것.
신 부회장이 신 총괄회장 집무실의 관리권한을 인수하겠다며 경호원을 대동하고 34층 집무실을 장악한 지 불과 몇 시간이 지난 후였다.
어눌한 신 총괄회장이 “후계자는 장남이 될 것”이라는 말 한마디를 언론에 공개하기 위해 고령의 부친을 경영권분쟁의 무대로 올려놓은 신동주 부회장의 처사에 대해 비판여론이 쏟아지고 있다.
정상적인 상태라면 부친이 절대 허락하지 않았을, 집무실 공개는 물론 94세의 노쇠한 모습을 만천하에 공개해버린 장남의 돌발행보에 많은 국민은 “도대체 이제 와 부친을 팔아서 뭘 어떻하겠다는 건가”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결국, 거동이 불편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어눌한 말투에 정확한 판단능력이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운 94세 고령의 부친을 앞세워 벌이는 형제간 경영권 다툼은 단연 해외 토픽감이다.
롯데그룹 경영권분쟁이 던져주는 메시지는 기업가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탐욕스런 부의 대물림이 아니라, 기업이 수백 년간 지속할 수 있는 경영 DNA를 확고하게 심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롯데家 혈투는 이미 예견된 수순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창업자 신 총괄회장의 과욕이 부른 불가피한 갈등이라는 것. 신 총괄회장은 88세까지도 분기별로 전 계열사 대표이사로부터 경영실적을 직접 보고받을 정도로 최후까지 경영일선을 고집한 바 있다.
문제는 경영권승계를 미뤄온 신 총괄회장의 노회한 욕심과 승계에 대한 불안감이 현 롯데그룹 갈등을 불러일으켰다는 지적이다.
신 총괄회장은 실제 90세가 넘어서도 경영권승계와 관련한 재산분배 및 상속에 대한 법적 절차를 마무리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타이밍을 놓친 신 총괄회장의 패착과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부친의 판단력이 흐려진 틈을 타, 모든 것을 꿰차겠다는 형제간의 야망이 현 롯데그룹의 피비린내 나는 경영권분쟁의 본질이라는 분석이다.
집무실 점거와 공동관리에 이어 18일, 신동주 전 부회장이 롯데그룹에 자신에게도 업무보고를 하라고 요구했고, 롯데그룹은 월권행위라며 충돌하는 등 갈등국면은 계속되고 있다.
신동주 전 부회장 자문을 맡고 있는 민유성(사진) 전 산은금융지주 회장은 지난 16일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신 전 부회장은 신 회장이 드러나지 않은 중국 사업 실패로 신격호 롯데 총괄회장의 분노를 사, 밀려날 위기에 처하자 거꾸로 아버지와 형을 몰아내고 한일 롯데의 경영권을 차지하려는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신동주 전 부회장측은 현 신동빈 회장이 신 총괄회장의 반대를 무릅쓰고 중국 사업을 벌였다가 손실이 발생하자 이를 일본 롯데의 유보금으로 메꾸기 위해 한일 롯데그룹의 경영권을 모두 가지려 한다는 입장이라고 한국일보 인터뷰를 통해 밝혔다.
■ 실험대 오른 SK그룹 지배구조개선
6000억 원대 계열사 자금을 선물투자 등으로 날렸다가 최근 석방된 최태원 SK그룹 회장 횡령 사건의 본질 역시 경영권 승계 문제와 맞닿아 있다.
최 회장이 선물투자에 손을 댄 것은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 현실적 상황 때문이었다.
최 회장 횡령 사건은 김원홍이란 투자 전문가를 통해 선물투자로 몇백억 원씩 돈 번 경험을 한 최태원 회장이 선물투자로 조 단위 돈을 벌 속셈으로 김 씨에게 총 6000억 원을 넘겨줬다가 떼인 사건이다.
김 씨는 이 가운데 3000억 원을 선물투자로 날려버렸고, 나머지 3000억 원은 자신의 회사에 2000억 원을, 나머지는 개인적으로 사용해버린 것으로 재판 결과 드러났다.
사실 삼성그룹 이재용 부회장의 경우 이미 10대 때부터 3세 경영체제를 위한 지분 및 상속절차, 자식 간 계열분리 절차를 밟는 등 오랜 세월에 걸쳐 진행된 바 있다.
반면 SK그룹의 경우, 창업주인 최종현 전 회장이 이 부분을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결국 작고하면서 전혀 손을 대지 못한 채로 최태원 체제로 넘어오게 된 것.
결국, 최 회장은 형제간 계열분리, 순환출자를 통한 지배구조 개선 등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선물투자의 독배를 마신 것이다.
문제는 이런 과정에서 이뤄진 배임과 횡령을 SK그룹 내부 시스템으로 걸러주거나 견제해줄 아무런 장치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최 회장의 6000억 원대 횡령사건은 투명한 경영시스템과 견제구조를 갖추지 않는 한, 대주주 오너의 전횡은 언제든지 기업을 부실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 사례다. 최 회장이 어떻게 합법적으로 경영권을 확고하며 형제간 계열분리를 잡음없이 해낼지, 시험대에 올라 있다.
■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두가지 고민
삼성그룹 3세 경영승계가 갖는 사회적 의미는 매우 크다. 국내 가장 큰 기업이고, 이병철 창업자, 이건희 회장, 이재용 부회장으로 이어지는 삼성家의 상속과 경영권승계는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뿐 아니라, 국민적 관심사항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삼성그룹의 3세 경영승계는 국민적 찬사와 존경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어 보인다. 무리한 상속세 줄이기와 변칙에 가까운 3세 오너의 재산 부풀리기와 부의 대물림은 결국 우리 사회에 ‘반(反) 삼성’ 분위기를 확산시키는 계기가 됐다.
삼성그룹은 이 부회장을 둘러싼 두가지 부담에 대해 지속적으로 반 삼성 분위기를 풀어가는 작업을 해야할 것으로 지적된다.
첫 번째는 삼성SDS 지분 헐값매입, 일감 몰아주기를 통한 천문학적인 오너 자산 증식이다.
이재용 부회장은 당시 삼성SDS 주식을 액면분할, 유상증자, BW 저가 인수 등의 방법으로 주당 평균 1180원, 지분 11.25%를 사들이는 데 총 103억원 규모를 투자한 바 있다.
삼성SDS 상장 후 수백 배가 넘는 시세차익으로 이재용 부회장의 주식은 단숨에 5조 원대를 넘어섰고,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등 또 다른 이슈로 이재용 부회장의 시가총액은 순식간에 10조 원대를 넘어선 바 있다. ‘편법증여’라는 비판이 제기된 바 있다.
두 번째는 바로 이건희 회장 입원후 빠르게 진행된 공익재단을 통한 경영권승계 구도의 문제다. 이 역시 상속세를 줄이기 위한 목적이 아니냐는 논란에 휩싸였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 5월 투병 중인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삼성문화재단과 삼성생명공익재단의 이사장 자리를 물려받았다. 이에 앞서 삼성문화재단과 삼성생명공익재단은 지난해 기획재정부로부터 성실공익법인으로 지정을 받았다.
이 부회장이 그룹을 승계하기 위해선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핵심인 삼성생명의 이건희 회장 지분 20.8%를 넘겨받아야 한다. 삼성생명 지분을 상속받을 경우 예상되는 상속대는 대략 5조 원대.
이 회장이 지분을 삼성 공익재단에 넘기고, 이 부회장이 공익재단을 지배하는 현행 구조라면 그만큼의 세금을 내지 않고 그룹 지배가 가능한 것이다.
현행 상속·증여세법에 따르면 기업의 공익재단은 개인·법인으로부터 계열사 지분 5% 미만을 인수 시, 면세 혜택을 준다. 여기에 성실공익법인으로 지정되면 계열사 지분 10% 미만까지 상속세와 증여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
이 부회장 경영권 승계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이 싸늘한 것은 이런 절세와 계열사의 미래가치를 한 곳으로 몰아 오너 재산을 천문학적으로 불려 온 과도한 자산증식 때문이다.
최근 정치권에서 삼성이 공익재단을 이용해 경영권을 승계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상속세 및 증여세법의 ‘성실공익법인’ 제도를 폐지하는 법안을 이달 중 발의할 계획이다.
즉 계열사 주식을 공익재단 출연 시 총 지분의 10%까지 상속·증여세 감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혜택을 없애, 공익재단을 통한 우회 상속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삼성그룹 이재용 부회장의 향후 행보는 그래서 중요하다.
이재용 부회장이 이런 부담을 털고 어떻게 투명성과 함께 신뢰성을 높이는 경영행보로, 경영권승계에 따른 반 삼성 분위기를 희석시켜나갈 지 주목된다.
■ 빛나는 선언, 존경받는 신세계 그룹의 1조 원대 상속세 납부
이병철 고 삼성그룹 창업자의 막내딸인 이명희 전 신세계그룹 회장은 2006년 “1조 원대의 상속증여세를 내겠다”는 입장을 공식 밝혀, 재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재계 역사상 최대 규모 상속세다.
이 전 회장은 정용진 체제로 전환하면서 합법적인 상속세를 내고 철저한 정당성을 기반으로 승계하겠다는 의도를 대내외에 밝혔다. 정용진 부회장과 정유경 부사장은 지난 2007년 아버지 정재은 명예회장으로부터 신세계 주식 147만 주(당시 시가 약 7000억 원)를 증여받으면서 3500억 원 규모의 증여세를 신세계 주식으로 현물 납부했다.
신세계그룹은 이명희 회장 부부의 지분 가운데 3분의 2는 사전증여 해 정당하게 증여세를 내고, 나머지 3분의 1은 사후 상속해 경영권을 넘겨준다는 계획이다. 아직 8000억 원대 규모의 상속세를 더 내야 하는 정용진 부회장의 증여작업이 마무리되면 신세계 그룹은 가장 많은 상속세를 낸, 모범적인 기업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범삼성가에서 이병철 전 삼성그룹 창업자의 막내딸인 이명희 전 신세계 회장이 재계 전체를 통틀어 가장 바람직한 증여와 존경받는 경영권 승계작업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이유다.
이명희 회장 역시 상속세를 줄이고 절세를 하고자 하는 욕망이 없을 리 없었을 테고, 마음만 먹으면 동원할 방법은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당당하게 경영권을 승계한다는 평소의 철학대로 1조원대가 넘는 상속세를 납부하겠다고 선언,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다하는 이른바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한 경영자로 평가받고 있다.
빈부격차로 인한 사회적 갈등이 점점 심해지고 있고, 재벌 대기업에 대한 국민여론 역시 갈수록 따가워지고 있는 현 상황에서 신세계그룹의 당당한 경영권 승계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를 테면 삼성그룹이 경영권승계를 하면서 수조원을 당당하게 납부하며 정당성을 인정받았더라면 향후 삼성그룹 이재용 부회장의 행보가 더욱 평가받고 지속적으로 사회적 존경과 찬사를 받을뻔 했다는 지적은 그래서 두고두고 아쉬운 대목으로 남는다.
재벌 대기업과 오너의 사회적 리더쉽은 철저히 투명성과 도덕적인 정당성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국민은 이제 알고있기 때문이다. 삼성그룹 역시 법테두리 안에서 법을 지켰음에도 불구하고 사회 전반에 반(反)삼성 분위기가 강한 것은 이 때문이다. 세상 모두가 다 아는 이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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