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싸게 파는 게 죄가 됩니까? 대리점이 싸게 팔겠다는데 왜 정부가 나서서 이통 3사 가격담합을 부추깁니까? 세상에 이런 엉터리 법이 어디 있나요”
“미국에서는 갤럭시S8이 사실상 1+1 행사로 반값에 출시되고 있어요. 근데 한국에서는 이런 경쟁을 못 해요. 왜냐. 법으로 가격할인 쟁쟁을 못하게 하니까요. 정부가 사업간 가격할인 경쟁을 가로막고 담합을 유도하는 단통법이 어떻게 합헌입니까?”
헌법재판소가 25일 휴대폰 지원금(보조금) 상한제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리자 이에 반대하는 여론이 빗발치는 등 거센 후폭풍을 맞고 있다.
유통업계와 소비자단체들은 헌재가 25일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의 핵심으로 꼽히는 지원금 상한제에 대해 그동안 자유로운 시장 경쟁을 제한한다는 비판여론에도 불구하고 합헌이라며 방통통신위원회 손을 들어주자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다.
전국휴대폰판매점연합회 측은 “보조금 상한제는 사업자 간 자율적인 시장 경쟁을 정부가 직접 제한하고 막는 대표적 관치행정”이라며 “결국 이 때문에 국민은 미국처럼 공짜폰이나 미국처럼 반값 갤럭시S8 혜택을 보지 못한 채 100만원 가까운 비용을 지불하는 ‘호갱(호구 고객)’이 되고 있다”고 맹비난하고 나섰다.
연합회 및 유통업계는 단통법 때문에 휴대폰 대리점 폐업이 속출하는 등 유통시장이 고사 위기를 맞고 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 보조금 상한제의 핵심, 정부가 이통3사 할인 경쟁 통제하는 관주도 시장개입
국내 스마트폰을 둘러싼 이통시장은 매우 기형적 구조를 보이고 있다. 삼성전자 LG전자 등 국내 스마트폰 생산업체들은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이른바 이통 3사로부터 단말기 가격할인 압박을 받지 않는다.
정상적인 시장이라면 빅바이어인 이통사가 구매물량을 앞세워 최대한 납품가(판매가)를 후려쳐 싸게 구매하는 당연하지만, 국내는 정반대의 상황이 버젓이 펼쳐지고 있다. 이를테면 삼성전자, LG전자가 신형 단말기 예정 판매가 100만원보다 대폭 낮춰 출시할 경우, 놀랍게도 이통 3사가 이를 극구 만류한다. 무조건 최대한 비싼 판매가로 책정, 출시하라고 요청한다.
이유는 이통 3사가 100만원 가까운 고가의 스마트폰 판매가를 빌미로 기기변경이나 신규가입 고객에게 보조금을 내세워 이를 대폭 할인해주는 것처럼 상품을 소개하고 2~3년간 의무적으로 사용토록 하는 장기약정상품 판매를 고집하고 있기 때문이다. 약정으로 묶어 고객이 그 기간동안 경쟁사로 쉽게 옮겨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전략이다.
최근 약정할인 관련 정액제 상품 대부분이 월 7만~15만원대로 엄청나게 비싼 요금제가 대부분인 것은 이런 구조를 악용한 이통 3사의 매출확대 전략 때문이다. 비싼 요금제일수록 단말기 할인 폭을 더 많이 주는 것처럼 한 후, 오랜 기간 약정으로 묶으면서 비싼 고가 월정액 상품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고착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설상가상으로 여기에 정부가 나서서 스마트폰 대리점, 즉 유통단계에서 대리점이 고객유치를 위해 할인해줄 수 있는 보조금 지원액조차 단통법을 내세워 상한선 이상 할인해주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유럽의 경우 이통사가 바잉파워를 내세워 스마트폰 제조사로부터 최대한 싸게 단말기를 구매한 후 약정상품과 할인 폭을 앞세워 신형 단말기조차 40만원이하 내지 공짜 폰 형태로 대거 출시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 이통시장은 이 두 가지 모두 왜곡돼 있다. 이통 3사가 단말기 고가출시를 요구하고, 정부가 나서서 유통대리점 할인 경쟁을 막는 이른바 ‘치열한 시장경쟁’을 원천 차단하는 희한한 상황이 버젓이 반복되고 있다.
헌재는 25일 영산대 법률학과 학생 등으로 구성된 청구인들이 지원금 상한제를 규정한 ‘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단통법)’ 제4조 1항이 헌법에 어긋난다며 제기한 헌법소원에서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합헌 결정, 소비자가 아닌 정부 손을 들어줬다.
헌재가 합헌 결정을 내리며 선고한 내용 역시 소비자들의 거센 반발에 직면해 있다. 헌재는 “방통위가 정해 고시할 내용의 대강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어 ‘포괄 위임금지’ 원칙에 반하지 않는다”면서 “지원금 상한제로 과도한 지원금 지급 경쟁을 막고, 나아가 이동통신 단말장치의 공정하고 투명한 유통질서를 확립해 이동통신 산업의 건전한 발전과 이용자의 권익을 보호한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소비자보호단체와 유통업계는 “왜 헌재까지 나서서 과도한 지원금 경쟁을 막는 정부 손을 들어주는지 이해하기 힘들다”면서 “전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악법인 단통법에 대한 이번 판결은 상당한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헌재의 이번 판결은 지원금 상한제가 사업자 간 소모적 경쟁과 소비자 차별을 없애는 등 시장 안정에 크게 기여했다는 피청구인 방송통신위원회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 헌재 판결 불구, 단통법 위헌 논란은 더욱 거세질 수밖에 없는 이유
이번 헌재 판결에도 불구하고 시장은 여전히 정부가 이통사 가격 담합을 묵인 내지 조장하고 있다는 분위기다. 유통업계는 “싸게 파는 게 죄냐”면서 “단통법으로 인해 전 국민이 호갱이 되는 사이, 이통 3사만 매년 수조 원의 추가 이익이 쌓이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문제는 단통법 합헌 결정에도 불구하고 이런 구조적 문제로 인해 ‘좀 더 싸게 팔려는’ 유통업자와 ‘좀 더 싸게 사려는’ 소비자들의 요구가 맞물리면서 음성적인 블랙마켓이 오히려 활기를 띠는 부작용을 양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전히 페이백(정가로 개통했다가 현금으로 환급해주는 보조금)이 기승을 부리는 등 불법 보조금이 사그라지지 않는 것은 단통법에도 시장 논리가 여전히 작동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이를테면 스마트폰 대리점들이 자유롭게 보조금 할인경쟁을 하면 이런 음성적 페이백 시장은 종적을 감추고 국민과 소비자들은 신형 공짜폰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된다는 설명이다.
이번 헌재 결정에 따라 지원금 상한제는 9월 말 제도 종료 때까지 효력이 유지되지만, 비난여론과 함께 유통업계의 집단 반발로 인해 법개정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단통법은 2014년 10월 1일 시행된 이래 매달 25만~35만원 범위내에서 방통위가 사업자별로 지원금 상한제를 지시하는 어처구니없는 행정이 반복되고 있다.
이 때문에 신형 스마트폰을 출시해도 폭발적인 판매가 이뤄지지 않아 단말기업체들은 물론 유통 대리점들조차 극심한 판매부진으로 생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과정에서 지원금 상한제 조기 폐지를 공약으로 내건 바 있어 이번 헌재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단통법은 법 개정을 통해 상한제 폐지가 유력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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