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텔레콤 박정호 사장과 LG유플러스 권영수 부회장은 공히 그룹 총수의 신임이 매우 두텁다는 공통점이 있다. 박정호 사장은 소버린과 경영권 분쟁 때 최태원 회장의 비서실장은 지낸 인물로 최 회장을 가까이서 보좌해온 측근이다. 실제 SK그룹에서 가장 핵심사업은 텔레콤과 에너지 두 파트이기 때문에 지난해 말 인사에서 박 사장이 SK텔레콤 사령탑을 맡은 것은 예상된 결과였다.
재무통인 권영수 부회장은 구본무 LG그룹 회장과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가족같은 관계다. 실제 권 부회장은 구본무 회장과는 그룹내에서‘패밀리’로 불릴 만큼 최측근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권 부회장은 LG전자와 LG디스플레이 대표이사를 지내는 등 그룹 핵심사업 요직을 두루 거친 실세 중 실세다.
권영수 부회장의 LG유플러스 CEO 인사도 같은 맥락이라고 봐야 한다.
이런 그룹 총수의 의중을 가장 잘 알고 가장 신임받는 두 사령탑이 스페인 바르셀로나 현지에서 열리고 있는 글로벌 정보통신기술(ICT) 전쟁터인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2017 현장에서 만나 뜬금없는 “가입자 뺏기 그만, 상생경영 선언”에 합의해 글로벌 조롱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MWC 행사에 참가 중인 많은 벤처기업가와 전문가들은 이통 3사간 뻔한 가입자 뺏기 경쟁을 모바일분야 세계 최대 전시장에서 마치 입맞추듯 “상생선언”발표하는 건 너무 격떨어진 해프닝이라고 일제히 혀를 찼다.
일부 CEO들은 시장에서의 경쟁은 당연한 현상이라며, 이통 3사는 기술 및 서비스혁신을 통한 경쟁보다는 보조금과 마케팅 판촉전을 앞세운 소모전에 가까운 제로섬 가입자 뺏기 경쟁을 펼치고 있다며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며 강하게 두 CEO를 싸잡아 비판하고 나섰다.
■ SK, LG그룹 간판스타 CEO가 굳이 스페인 현지에서 이런 촌극을 벌인 까닭은?
두 회사 홍보라인은 양사 CEO가 1일 MWC 2017 현장에서 만나 이런 내용의 ‘상생경쟁’을 해나가기로 뜻을 모았다고 대대적으로 언론홍보에 나섰다.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 수장들의 이 같은 현지 합의 기사가 보도된 배경은 권영수 LG유플러스 부회장이 SK텔레콤 부스를 방문하면서 이뤄졌다.
권 부회장은 SK텔레콤 부스에서 커넥티드카 ‘T5’, 인공지능(AI) 비서 ‘누구’ 등에 대해 다양한 질문을 쏟아냈고, 박정호 SK텔레콤 사장과 최진성 종합기술원장이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면서 자연스럽게 우호적인 발언으로 이어졌다는 게 현장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박정호 사장은 권영수 부회장과의 회동 이후 이날 현지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통 3사가 (앞으로는) 가입자를 유치하기 위해 이전투구하지 않을 것”라고 밝혔다. 박 사장은 이어 “앞으로 우리는 3G, 4G 시대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서로 상생적 경쟁을 할 필요가 있다”며 이같은 가입자 뺏기 경쟁을 더 이상 하지 않겠다는 뜻을 강조했다.
권영수 LG유플러스 부회장 역시 “국내는 물론 해외 통신사와도 많은 것을 협력해야 한다”면서 MWC에서 버라이즌, 보다폰, 티모바일 등 글로벌 통신사와 만나 협력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공개했다. 권 부회장은 가입자 확보 경쟁에만 몰두하기보다는 다가올 5세대(5G) 통신시대에 대비, 국내외 사업자와 협력해 나가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라고 홍보실은 부연 설명하고 나섰다.
두 CEO는 두 회사가 경쟁관계지만 서로 배우고, 협력하겠다는 뜻을 확인했다고 양사 홍보실 관계자는 설명했고 이어 국내 언론에 대서특필된 것으로 알려졌다. 박정호 사장은 현지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우리 부스를 방문하신 권영수 부회장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면서 “권 부회장이 우리(SK텔레콤) 부스에 와서 괜찮다고 평가했고, 우리 역시 LG유플러스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현지에서 가입자뺏기 경쟁을 자제하고 다가올 5G 시대를 선점하기 위해 협력하자는 취지의 양사 CEO 발언이 보도되자 현지 참가 IT벤처산업계와 전문가들은 “굳이 그런 일을 현지 글로벌 행사장에서 상생 선언할 정도의 사안이냐”며 평가절하했다.
전문가 그룹은 국내 이통 3사의 경우 이번 MWC 전시장에서 5G서비스 상용화를 핵심 차세대 서비스로 집중 소개하고 있지만, 이는 화웨이 등 무선통신 장비업체의 기술력에 의존하는 것일뿐 국내 이통 3사가 자체적으로 개발할 수 있는 독자 기술이 아닌 점을 지적하며 “왜 이통 3사가 5G 서비스를 미국과 유럽 전시회 때마다 들고나와 홍보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지적했다.
오히려 원천기술이 뒷받침되지 않는 차세대 5G 서비스 홍보보다는 차별화한 서비스상품 중에서 수출 가능한 제품을 전시, 해외시장 진출 가능성을 타진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의 지배적이다. 일부에서는 국내 이통3사는 “전형적인 내수소비형 비즈니스모델”이라며 “사업규모와 20년 가까운 모바일서비스 경험을 토대로 이젠 해외 시장에서 승부를 걸어야 할 것”이라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특히 국내 이통 3사의 경우 수조원대 통신 장비와 스마트폰을 수입, 포화된 국내 시장에서 가입자 돌려막기식의 가입자 빼앗기 경쟁에만 골몰할 뿐 해외시장에 직접 진출, 해외매출을 올리는 등의 글로벌사업이 사실상 거의 없는 점은 시급히 개선해 할 것으로 지적된다.
일각에서는 이통 3사가 단통법을 통한 과도한 영업이익이 발생함에 따라 해외시장 진출에 직접 연관이 없으면서도 CEO의 글로벌 이미지를 위해 습관적으로 해외 IT전시회에 대규모로 참여하는 것은 실속 없는 전시행정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 이통 3사는 수많은 해외 전시회 참가에도 불구하고 수출계약이나 현지 시장 진출 실적은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한편 KT 황창규 회장 역시 지난 27일 스페인 바르셀로나 현지 MWC 행사에서 “KT의 음성인식 인공지능(AI)기술력이 구글이나 아마존보다 낫다”는 발언을 해 글로벌 망신살이 뻗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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