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최근 직급 및 연공서열을 없애고, 호칭을 ‘님’으로 부르도록 하는 실리콘밸리식 인사제도를 발표하고, 삼성그룹이 5일 “소프트웨어 기초설계 엉망”이라는 내용의 그룹 내부 소프트웨어 개발 역량을 또다시 통렬히 비판하는 사내 방송을 내보내 화제다.
과연 삼성그룹, 특히 삼성전자가 이런 혁신적 제도와 자기반성을 통해 수평적 구조와 유연한 조직문화를 만들어, 소프트웨어 개발파워를 갖출 수 있을 지를 놓고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이날 삼성그룹 사내방송은 특히 삼성전자의 경우 구글보다 개발자가 9000명이나 더 많은데 절반이 초급 수준에 불과하고, 구글 수준의 능력을 갖춘 인재가 개발인력 전체 가운데 상위 6%밖에 안 된다는 신랄한 자아비판에 나서 화제를 모았다.
실제 삼성전자의 소프트파워는 왜 떨어지고, 그동안 소프트웨어개발을 어떻게 진행해 왔을까?
피치원은 삼성전자와 네이버 두 회사의 개발환경을 비교, 국내 재벌 대기업을 대표하는 삼성전자와 벤처산업계 선두주자 네이버 두 회사가 서로 어떻게 소프트파워를 키워가고 있는지 살펴본다.
피치원 분석결과 삼성전자 SW개발자 운영관리 방식은 네이버보다 거의 10년 이상 뒤진 시스템인 것으로 밝혀졌으며, 네이버는 구글 정도는 아니더라도 전체 개발운영시스템의 효율이 매우 뛰어난 실리콘밸리 스타일로 운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삼성전자는 네이버에 비해 SW개발자 업무효율에서 심각한 수준으로 떨어지는 것은 물론, 실제 전체적인 업무효율과 평가시스템에서도 상당한 격차를 보이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때문에 어떻게 삼성전자가 설립 15년 차에 불과한 네이버에 비해 인사제도 및 개발자 관리업무 능력이 뒤처지는 지, 그 원인에 대해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 삼성전자의 신 인사제도와 삼성그룹의 2탄 방송이 과연 혁신에 불을 지필수 있을까?
삼성이 그룹 내부 소프트웨어 개발 역량에 대한 통렬한 ‘우리의 민낯’이란 내용으로 사내 방송한 자아비판 2탄이 연일 화제다. 이와 맞물려 삼성전자가 지난달 말 직급 및 연공서열을 없애고 호칭도 ‘님’자로 통일해 부르도록 하는 등 실리콘밸리식 창의적이고 수평적 조직문화를 구축하기 위해 인사제도를 개편한 바 있다.
삼성은 5일 오전 사내 방송을 통해 전 계열사에 ‘삼성 SW 경쟁력백서(白書)’란 20분짜리 방송을 통해 “큰 그림을 그릴 줄 모르니 설계가 엉망”이라며 “SW의 초기 설계가 부실하고 땜질식 처방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삼성그룹의 이번 방송은 지난달 21일 방송한 1부 ‘불편한 진실’에 이어 2부 개념으로 ‘우리의 민낯’이란 주제로 방송됐다.
삼성그룹은 “윗사람이 만든 코드에 대해 사원이 ‘이게 문제다’라고 말할 수 있는 문화가 삼성 내부에 없다”고 비판한 뒤 “그러다 보니 삼성 환경은 능력 있고 전문성 있는 SW인재가 클 수 없는 지경”이라고 지적했다.
삼성그룹은 1부 방송을 통해 삼성전자는 2만여명대 개발자를 운영하는 구글, 페이스북보다 많은 3만2000명의 SW인력을 확보하고 있지만, 질적인 측면에서는 절반가량이 ‘초급 수준’에 불과할 만큼 뒤떨어진다고 비판했다.
삼성은 삼성 SW인력이 구글 입사 시험을 보면 1~2%만 입사가 가능한 수준이며, 구글 수준의 문제 해결 능력을 갖춘 SW인재는 상위 6%에 불과하다고 질타했다. 삼성은 그룹 내부 SW경쟁력이 떨어진 원인으로 이른바 꼰대 상사가 많은 ‘경직된 기업 문화’를 들었다.
언론은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이런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며 추켜세우고 있지만, 다국적 기업과 벤처산업계 반응은 싸늘하다.
모 소프트웨어업체 CEO는 “수평적 개발문화는 금방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라며 “임원이 SW를 알아야 하고, CEO가 새로운 조직문화를 만드는 것에 승부를 걸어야 이런 수평적 문화와 소프트파워를 갖출 수 있다”고 진단했다.
■ 의사 결정라인에 SW를 아는 사람이 없는 삼성전자
“버그가 몇 개 나왔죠? 몇 개를 수정한 거죠?”
지난해 연말 해체된 삼성전자 MSC(Media Solution Center)가 소프트웨어 개발자를 평가하는 방식은 제조업 삼성전자가 시행하는 KPI 평가 포맷 그대로다. 몇 개를 개발했고, 버그를 몇 개 잡았고 하는 게 바로 SW 개발자를 평가하는 방식이다.
외부 전문가들이 숱하게 “삼성전자가 제조업 DNA를 버리고 소프트웨어 DNA를 가져야 한다”고 외쳐도 이는 말처럼 쉽지 않다. 왜냐하면, 대표이사부터 부사장, 전무 등 수직적으로 형성돼 있는 핵심 의사 결정라인 중 SW를 제대로 이해하는 인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소프트웨어 파워를 키우고 소프트웨어 DNA를 갖추지 못하면 급속히 경쟁에서 밀릴 것이란 위기론이 확산되는 와중에도 삼성전자가 택한 것은 지난해 연말 단행한 충격적인 MSC의 해체다.
삼성전자 내에서 반도체, 가전, 모바일 어느 사업부에도 속하지 않고, SW 개발과 콘텐츠서비스 사업을 총괄해온 MSC의 해체로 삼성전자는 사실상 SW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한 것과 진배없다. 왜 삼성전자는 MSC를 포기했을까? 바로 부진한 성과 때문이다. 수익성을 따진 삼성전자가 내린 결론이다.
삼성전자 고동진 사장이 지난 2월,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삼성의 수직적인 문화가 혁신과 신선한 사고를 막는다”고 발언한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삼성전자가 아무리 소프트웨어 DNA를 심고, 소프트파워를 키우고 싶어도 현 조직문화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삼성전자 내부를 잘 아는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소프트웨어는 사실 팀 단위별로 자유분방한 구조여야 성과가 나거든요. 그런데 관리와 평가를 기존 제조업 방식대로 해버리니 결과가 뻔하죠. 삼성문화에선 SW 개발성과를 기대하기 쉽지 않습니다. 심지어 평가를 좋게 받으려고 일부러 버그를 더 많이 만들어놓고 이를 개선 후 KPI를 받는 예도 있어요”
“사실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은 자유분방해야 하거든요, 출퇴근도 자유롭고 업무시간에도 게임도 하고 놀기도 하고 해야 하는 데, 관리의 삼성스타일에선 쉽지 않죠”
MSC 같은 조직을 더 키우고 이를 통해 소프트파워를 키워야할 판에 거꾸로 MSC 조직을 없앴다는 점이 삼성전자의 위기를 키우는 본질이다.
소프트파워 없이는 절대 애플 아이폰을 이길 수도, 따라잡을 수도 없다는 것은 이젠 상식쯤 된다. 애플이 스마트폰 OS부터 AP는 물론 모든 혁신적 기능을 모두 자체 개발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애플 자체가 하드웨어회사가 아닌 SW개발자로 가득 찬 SW 회사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스마트폰의 코어인 OS를 구글에 의존하고 AP와 디스플레이 등 일부를 제외하곤 대부분 부품 및 미들웨어 납품업체를 통해 혁신적 기능을 수용할 수 밖에 없는 것은 하드웨어제조 중심의 회사이기 때문이다.
HW적인 경쟁력은 PC 산업처럼 지속적인 경쟁우위를 가져가기 힘들고, 후발주자들이 손쉽게 따라올 수 있다. 삼성전자가 화웨이 등 중국 회사에 위협을 받고 있는 것은 이렇듯 소프트파워가 절대적으로 취약하기 때문이다.
피치원이 ‘추락하는 삼성전자’ 시리즈를 통해 이재용 체제 삼성전자는 다시 SW파워를 키워야 하고, 그런 세계적 SW 개발자나 SW 회사를 지속적으로 영입하고 인수해야 한다고 지적한 것도 이 때문이다.
■ 삼성전자가 네이버의 독보적인 개발자문화를 벤치마킹해야 하는 이유
자, 그렇다면 국내 IT 벤처업계의 대명사, 네이버는 어떨까? 삼성전자의 SW개발문화가 얼마나 뒤쳐져 있고, 심각한지는 구글까지 갈 필요 없이 네이버만 살펴봐도 금세 드러난다.
판교 정자동 네이버 그린팩토리 사옥에 근무하는 프로그래머와 디자이너 수는 전체 인력의 70%수준인 1600여명. 이들은 대부분 기존 대형 SI업체나 여기에 하청받는 을, 병 출신이거나, 중견 SW업체 경력자들이고, 일부 공채 멤버 정도다.
네이버 개발문화의 가장 강력한 파워는 국내 최고수준의 개발자들을 빨아들이는 흡인력이다. 흡인력은 어디서 나올까? 바로 개발자들이 가장 원하는, 이른바 ‘개발에만 집중하고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을 철저히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형 SI업체 경력자들이 연봉이 깎이면서도 네이버로 향하는 게 이 때문이다.
대기업의 경우 상사가 소프트웨어나 프로그래머에 대한 인식이 낮은 탓에 개발자들은 늘 지원업무에 시달리며, 개발에 올인하며 성취감을 느끼는 특유의 개발자 만족도가 크게 떨어지는 실정이다. 네이버에는 개발자들에게 돌발 톱다운식 업무지시가 없다.
대기업의 경우 위에서 지시하면 팀장급이 10년이상 경력의 특급이나 고급 개발자에게 업무를 배당하고 개발자들에게 매일 매일 무엇을 개발했는지, 일일,주간단위로 업무일지를 쓰도록 하는 게 일반적이다. 삼성전자도 마찬가지. 네이버 개발문화의 가장 특징은 기존 대기업이나 SI업체, SW업체들이 애용하는 톱다운 방식 자체가 없다는 점이다.
프로젝트가 만들어지면 각 개발부서는 개발자 업무게시판을 통해 새롭게 기획된 업무 내용을 공고,지원자를 받는 형태로 진행한다. 팀장급 매니저는 사람 뽑는 일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바로 구글 실리콘밸리방식이다.
팀장은 심사를 통해 열정과 의지가 있는지, 팀워크에 문제가 없을지 등을 꼼꼼히 따져 팀원을 선발한다. 매니저들은 늘 조화를 이루고 자율적인 팀플레이를 가장 중요시한다. 이후 논의를 통해 개발자들 스스로 원하는 업무를 가져가도록 한다. 톱다운이 아닌, 수평적 의사결정을 통해 팀 스스로 결정하는 것. 개발자들은 자신이 하고자 하는 업무와 일의 양을 스스로 정하게 된다.
두 번 째 특징은 바로 출퇴근 제약 없이 자유롭게 일하는 방식이다. 출퇴근 자체를 체크하지 않지만, 여기엔 놀라운 비밀이 숨어있다. 바로 소스통합관리시스템에 체크인하는 업무방식이다. 일일 업무 일지를 작성할 필요도 없고, 출근하든 채택근무를 하던 어떤 제약도 없다.
다만 소스통합관리시스템에 체크인, 자신이 무슨 소스코드를 개발했는지 설명만 달아놓으면 된다. 체크인 후 소스 설명을 달지 않으면 다른 개발자들로부터 따가운 눈총과 지탄을 받는 ‘상호모니터링’의 독특한 문화가 형성되는 것이다.
수시로 체크인해 설명을 달지 않는다는 것은 일하지 않았다는 걸 의미한다. 이미 개발자들끼리는 서로의 능력과 개발방식에 대해 다 알기 때문에 특정인이 능력도 안 되면서 소스를 카피해 올리거나 게으름을 피우면, 팀원에 금세 들통나는 식이다.
소스버전관리시스템인 ‘SVN(Subversion)’, ‘GIT(분산버전관리시스템)’ 의 위력이 발휘되는 순간이다.
네이버 개발자들이 퇴근 후에도 수시로 체크인하고, 주말에도 밤새워 일하는 것은 약속한 시점에 개발을 끝내지 못할 경우, 자신으로 인해 프로젝트 자체 진척도에 심각한 차질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네이버 개발자들은 퇴근 후, 주말에도 수시로 체크인해 자신이 맡은 업무를 책임지고 완성하는 문화가 형성돼 있다. 결국 네이버 개발자들 사이엔 자연스럽게 눈에 보이지 않는 실력상의 서열이 만들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의 개발능력을 뽐내고, 완성도 높은 코드를 통해 새로운 네이버 서비스 오픈에 열광하며 환호한다. 개발자간 업무회의는 거의 하지 않는다. 모두가 한눈에 업무진척도를 볼 수 있기 때문에 굳이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기획팀 등 타 부서와의 회의도 철저히 배제한다. 기획팀에서 오는 문서는 이미 온라인상에 다 공유가 되기 때문에 꼭 참석을 원하는 개발자만 참석하는 식이다. 이 때문에 거의 외부 간섭없이 개발에만 몰입하는 분위기다. 그게 바로 주당 근무시간은 평균 50시간을 넘는 경우가 허다하고, 주말근무도 일상적인 그들이 행복해하고 만족하는 요소다.
이렇듯 강도 높은 근무환경이지만, 그들은 개발자간 수평적 협업을 통해 자신이 개발한 SW의 완성도와 자신이 개발한 서비스가 네이버라는 툴을 통해 5000만 국민이 이용한다는 자부심과 성취감으로 밤낮, 주말 없이 개발에 매달리면서도 높은 만족감을 드러낸다.
구글, 애플 같은 실리콘밸리식 개발문화가 이미 네이버에는 정착돼 있는 것이다. 자유로운 출퇴근, 자유로운 재택근무에서 업무성과평가는 빈틈이 없다. 소스관리통합툴에서 개발자별 코멘트만 추출해 평가하면 누가 얼마나 많은 일을 했고, 중요한 핵심적 일을 했는지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프로그래밍을 진정으로 좋아하고 사랑하지 않은 개발자는 적응하지 못한다. ‘오다꾸’로 불리는 개발에 미친 이들이 지금의 네이버를 견인하고 있는 것이다.
40대 중반을 넘긴 개발자들이 “정말 자면서도 개발합니다”라는 말을 쉽게 뱉을 만큼 네이버 개발자들은 타 대기업에 비해 한 명이 3,4명 역할을 할 정도로 개발효율에서 독보적이다. 그들이 높은 연봉도 마다하고, 편한 업무여건도 마다하고 네이버에 입사, 행복해하는 것은 이렇듯 개발자 최우선 시스템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네이버가 ‘V라이브’같은 글로벌 서비스를 3개월 만에 개발, 출시하는 개발파워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라인의 성공 역시 네이버 소프트파워가 만든 걸작인 것이다. 네이버의 기술 연구 센터인 네이버랩스는 그간 축적한 인공지능 기술의 성과를 발표, 기술력과 가능성을 국제적으로 다시 한번 입증하기도 했다.
네이버랩스는 지난 26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규모의 컴퓨터 비전 및 패턴 인식 학회인 ‘Computer Vision and Pattern Recognition(CVPR 2016)’의‘VQA(Visual Question Answering) 챌린지’ 부문 2위를 수상, 전 세계에 개발력을 과시했다.
▶미 HP,MS,애플을 거친 네이버 송창현 CTO를 주목하라
네이버의 실리콘밸리식 개발문화는 현 송창현 CTO의 작품이다. 미 퍼듀대 졸업후 미 HP,MS,애플 등 실리콘밸리 기업에서 오랜 기간 개발문화를 경험한 그가 네이버에 심은 개발 DNA가 바로 ‘수평’, ‘유연성’, ‘몰입’ 3가지 키워드다.
본부, 팀, 센터 등 수직적 조직 구조를 없애고, 빠른 의사결정을 위해 기획자, 개발자, 디자이너를 하나의 조직으로 뭉친 ‘셀(cell)’ 조직을 신설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네이버에는 지금도 20여개 이상의 ‘프로젝트’ 조직들이 독립적으로 움직이며, 지난해말 공개한 프로젝트 ‘블루’를 통해 ‘로보틱스’, ‘모빌리티’, ‘스마트홈’ 등 향후 5년간 1000억원이 투입되는 거대한 기술개발을 진행중이다.
송창현 CTO는 “이미 SW와 HW의 경계가 무의미해지는 시대로 진입했다”면서 “구글, 페이스북 뿐만 아니라 알리바바, 바이두, 텐센트 등과 같은 기업들도 이미 ‘모바일 혁명’그 이후를 준비하고 있기 때문에 네이버 역시 이들 글로벌 ICT 기업처럼 움직여야 한다”고 밝혔다.
결국 삼성전자의 소프트타워는 네이버같은 개발자문화를 갖춰야만 가능하고, 이는 철저히 최고경영진의 확고한 의지와 실천에 달려있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네이버 이해진 의장이 소프트파워를 키우기 위해 이미 4년여전에 이런 시스템을 갖췄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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