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표 벤처기업가이자 엔젤투자가인 호창성 더벤처스 대표 구속사건을 계기로 중소기업청이 운영하는 창업지원사업 ‘팁스(TIPS)’에 대한 전면적인 손질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서울북부지검 국가재정·조세범죄수사팀이 호창성 대표를 구속하면서 공식 발표한 내용은 팁스의 보조금을 받아준다는 명목으로 신생 스타트업 5개사로부터 30억 원 상당의 지분을 받아 챙기고 허위 계약서를 작성, 지분을 받은 것을 숨기고 중간에서 보조금 20억 원을 가로챈 횡령 배임 혐의다.
검찰 발표자료에 따르면 중기청 팁스 자금 20억원을 가로채고, 더벤처스가 투자한 5개사로부터 30억원 상당의 지분을 받은 것은 물론 투자분 이외 팁스자금을 통한 지분에 대해서는 이중 계약서를 작성해 지분을 받아 챙겼다는 설명이다.
실제 더벤처스에서 근무했던 관계자들은 더벤처스가 투자회사에 대한 경영 및 사업지원을 위해 별도 전담팀을 꾸려 지원하면서 이를 명목으로 연봉개념의 지분을 받은 사례가 있다는 증언을 하고 나서 이 같은 정황을 뒷받침하고 있다.
사실 이번 사건은 호창성 대표의 문제보다는 김현진 더벤처스 대표디렉터가 운영상 여러가지 문제를 드러낸 것이 사정당국에 포착되면서 사건화됐다는 게 스타트업계의 전반적인 시각이다.
현재 더벤처스는 공식 입장을 통해 이 같은 사실을 강하게 부인하며 정상적인 투자와 계약에 따른 지분만을 확보하고 있다고 밝혔으며, 투자회사 5개사 역시 강압이나 다른 팁스지원금을 명목으로 추가 지분을 요구한 사례는 없다고 해명하고 나섰다.
■ 흥청망청 비리온상 팁스, 전면수술 불가피
“우리가 1억원을 투자해줘서 중기청 팁스 자금 9억원이 더 들어온 것이다”
팁스를 둘러싼 비리와 뒷거래가 위험수위를 넘고 있다. 팁스 투자를 명목으로 신생 스타트업에 뒷돈이나 주식을 요구하는 벤처캐피털(VC)업체 심사역이 등장한 것은 스타트업계엔 공공연한 비밀이다.
모 스타트업 CEO는 “올해 초 IR관련 행사 후 몇몇 스타트업 CEO와의 식사자리를 통해 모 회사 CEO로부터 VC 심사역한테 일정액의 리베이트로 주면 9억원을 추가 투자받을 수 있다는 얘기를 들은 바 있다”고 말했다.
O2O관련 스타트업 CEO는 “테헤란밸리 유명한 VC는 아니고 규모가 작은 VC 심사역으로부터 팁스 투자제안을 받은 적이 있다”면서 “지분보다는 현금으로 10%를 요구해 고민하다 거절한 바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주위에 심사역과 이런 뒷거래를 통해 팁스 자금을 투자받은 스타트업체가 일부 있고 자신이 아는 모 기업도 정확히 액수는 알 수 없지만, 심사역에 리베이트를 주고 10억원을 투자받은 바 있다고 털어놨다.
중소기업청이 2014년 시작한 팁스 사업은 민간 엔젤투자사를 운영사로 선정, 이들 엔젤투자사가 1억 원을 투자하면 정부보조금을 최대 9억 원까지 지원해주는 스타트업 창업지원 정책이다.
문제는 VC업체가 투자대상 업체로 확정하는 순간, 9억원의 정부투자금을 추가로 받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팁스는 VC업계도 스타트업계에도 뒷거래 시비가 끊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팁스가 비리의 온상이 되고 있는 것은 소수의 운영사가 투자금보다 과도한 지분을 요구할 개연성은 늘 존재하기 때문이다. 실제 “내가 소개해줘서 많은 지원금을 받는 거니까 당연히 지분을 더 줘야 한다”는 요구가 심심찮게 이어지고 있다는 것.
VC 입장에서는 이런 팁스 구조를 악용해 투자대상 기업에 다양한 요구를 할 수 있고, 투자를 원하는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팁스 자금 9억원을 추가 유치하기 위해 VC사가 요구하는 내용을 수용할 수밖에 없는 관계에 놓이는 것이다.
팁스는 VC 입장에서는 1억원 투자를 하면서 9억원을 추가 투자해주는 특혜성 카드로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 비리의 온상이 되는 핵심 메커니즘인 것이다.
실제 1억원을 투자하고 팁스 자금을 붙여줘 지분 30%대를 넘게 확보한 운영사가 상당수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추가지분을 요구했다거나, 이면계약서 논란이 끊이지 않는 것도 이런 비리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팁스의 운영구조 때문이다.
이 때문에 VC가 팁스 투자금을 빌미로 과도한 지분을 요구하는 것은 물론 심사역 차원에서 뒷돈을 거래하는 ‘팁스 리베이트’ 관행이 공공연하게 자행되고 있어, 대대적인 손질이 시급한 실정이다.
■ 현대자동차, 포스코 등 대기업이 팁스자금을 지원받는 것도 문제
팁스의 정책취지는 성공벤처인이 주도하는 엔젤투자사가 유망한 기술창업팀을 발굴, 집중 육성한다는 것이 주요 골자이다. 이를테면 본엔젤스, 퓨처플레이와 같은 창업가 출신에 전문 투자경험이 풍부한 엔젤투자자가 적합한 선정사 대상인 것이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중기청이 팁스 운영사로 선정한 VC중에는 현대자동차, 포스코, ETRI홀딩스 등 대기업이나 정부출연기관은 물론 인포뱅크 등 투자전문기관이 아닌 일반 벤처기업은 물론 컨설팅 전문업체 등이 버젓이 운영사로 선정돼 있어 특혜와 자격 논란이 일고 있다.
투자업계는 “아니 엔젤투자자를 대상으로 하는 팁스 운영사에 현대자동차와 포스코라는 거대 재벌 대기업이 선정돼 자금을 지원받는 게 말이 되느냐”면서 “현대자동차가 어떤 회사에 투자할지는 불을 보듯 뻔한 것 아니냐”면서 강하게 비판했다.
또다른 엔젤투자단체 관계자는 “투자업은 매우 전문분야이고 고도의 업력이 필요한 분야인데, 이런 부실한 운영사선정은 결국 국민세금,정부 예산만 날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밖에 없다”고 팁스 운영사 전반에 대한 손질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정부 스스로 팁스 자금운용과 관련, 심각해지는 모럴헤저드를 방치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팁스가 정부의 창업지원프로그램 중 단연 호평을 받고 있지만, 사업 실패 시 상환의 의무도 없고, 성공하더라도 일부 자금의 40%(최대 2억원)만 상환하도록 해 사실상 ‘눈먼 돈’이란 인식이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스타트업 창업 시드머니가 많이 풀어지는 것은 긍정적인 일이지만, 국민 혈세로 충당되는 자금을 지원받는 스타트업과 벤처기업들이 정부자금에 대한 도덕적 책임 대신 ‘먼저 먹는 놈이 임자’라는 심각한 도덕적 해이가 만연해 정부가 이런 흥청망청 분위기를 조장한다는 우려가 쏟아지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중기청은 지금까지 총 1000여억원의 팁스자금을 지원했고, 올해 역시 470억원규모를 지원한다. 팁스 운영사는 지난해 기준 본엔젤스, 케이큐브벤처스 등 총 26개사가 선정돼 운영 중이다.
이 때문에 끊이지 않는 비리에 이어 엑셀러레이터와 VC들에 대한 과도한 특혜성 정책자금이란 논란이 끊이지 않는 팁스 정책에 대해 전반적인 수술이 불가피하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박근혜정권 창조경제 정책의 최대 수혜자인 중기청에 연간 수십조원의 창업정책자금이 쏟아지면서 중기청의 정책자금 관리능력이 이미 통제수위를 넘었다는 지적도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한편 구속된 호창성 대표 성공한 대표 벤처기업가다. 미국 유학 시절 동영상 자막업체 ‘비키’를 창업, 2007년 일본 인터넷 기업 라쿠텐에 2000억원(2억 달러)에 매각했다. 이후 귀국해 2012년 국내에서 관심사를 기반으로 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빙글’을 창업했고, 2014년 VC인 더벤처스를 설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