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전 부도를 맞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던 벤처 1세대 이민화 창조경제연구회 이사장이 창업했던 의료기기업체 메디슨 몰락 스토리가 SNS를 후끈 달구고 있다.
이민화 전 메디슨 회장을 다룬 2002년 보도된 ‘벤처로 일어서 투기로 망한다’제목의 프레시안 기사가 뒤늦게 토,일 SNS에 엄청나게 공유되며 엇갈린 평가와 촌평들이 쏟아지고 있다.
당시 프레시안 기사의 요지는 벤처업계의 대부 이민화의 ‘벤처연방 신화’가 붕괴됐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금융을 몰랐던 벤처의 말로’란 부제와 함께 ‘묻지마 투자’가 횡행하기 시작한 99년부터 이민화의 ‘벤처정신’이 변질되기 시작했다고 소개하고 있다.
프레시안은 기사에서 이 과정에서 이민화 회장은 자신의 뿌리인 메디슨의 기술개발은 도외시한채 유동성이 문제되자, 평화은행 인수전 참가 등 금융기관이나 벤처캐피탈을 만들어 이를 해결하려는 치명적 실수로 부도를 맞았다고 보도했다.
프레시안은 벤처정신을 잃고, 일확천금을 노린 투기장에 뛰어든 이민화 전 회장의 잘못된 판단으로 메디슨은 결국 ‘벤처로 일어서 투기로 망한 셈’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토,일 주말사이 2002년 기사가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엄청나게 공유되면서 새롭게 메디슨과 국내 벤처산업계 대부이자 1세대 원조 창업자로 통하는 이민화 창조경제연구회 이사장에 대한 갑론을박이 확산되고 있다.
엄청나게 공유되며 사태가 심각하게 돌아가자 이민화 이사장은 6일 오후 직접 나서 “메디슨 발 벤처바람은 의료계를 넘어 벤처전반에 확산된바 있다”면서 “메디슨은 기업인을 만드는 기업으로, 100개 이상의 기업이 나오고 메디슨 마피아의 기업가치는 6조원을 넘어섰다”고 공개적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이민화 이사장은 “벤처기업은 이제 350조원의 매출과 1%의 GDP성장기여로, 대한민국의 성장과 고용의 견인차로 부상했고, 아쉬운 점은 많지만, 뿌듯하다”고 소회를 밝혀, 메디슨이 있었기에 지금의 벤처산업이 활성화할 수 있었다는 뉘앙스로 자신의 소견을 밝혔다.
이민화 이사장은 이와함께 올해가 메디슨 창업 30주년인 점을 공지하고, 8일과 15일 열리는 메디슨 30주년 기념행사와 벤처협회 20주년 기념행사를 축하해달라는 응원의 메시지를 남겼다.
이민화 전 메디슨 창업자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고 있다. 당시 메디슨그룹의 부도는 벤처산업계에 엄청난 충격을 준 바 있다.
메디슨이 몰락한 것은 당시 코스닥거품의 최정점에서 시가총액 1조원대를 넘는 메디슨의 기업가치를 감안,수백억원대의 은행대출을 통해 기업확장에 나섰던 게 치명적인 화근이었다.
결국 벤처거품이 꺼지고 주식시장이 폭락하자 메디슨 시총은 10분의 1 토막이 났고, 결국 은행권의 대출상환요구로 부도를 맞고 순식간에 몰락하고 말았다.
당시 이민화 이사장은 “(시가총액)착시현상을 느끼지 못해 (차입금 상환의) 위험을 몰랐다”고 인정해 화제를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당시 마이크로소프트사와 1000억원규모 인수합병 합의를 끝낸 한글과컴퓨터 이찬진 창업자가 합병 사인 하루전날 이민화 당시 메디슨회장을 만난후 MS와의 합병합의를 파기한 사건은 당시 벤처거품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유명한 일화다.
이민화 이사장은 당시 토종 SW인 한컴을 살려야 한다며 국민정서에 호소하는 여론전을 펼친 끝에 한컴을 시총 5000억원대가 넘는 황제주로 만드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자본시장과 금융을 통한 한컴의 재기를 확신했던 이민화 이사장의 결정은 오판으로 돌아갔고, 이후 한컴은 거품이 꺼지면서 수없이 대주주가 바뀐 바 있다.
이민화 이사장을 멘토로 삼았던 이찬진 당시 한컴사장은 그이후 드림위즈를 설립해 10여간 운영하다, 사실상 접고 지금은 모 상장사 전문경영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벤처열풍의 최정점에서 최고의 위치에 올랐던 이민화 이사장은 벤처거품이 꺼지며 가장 큰 타격을 입었던 전설적인 벤처 1세대 인물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이러한 부도로 망한 기업가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최근 창조경제현장에서 살아있는 생생한 기업가 정신을 설파하고 벤처산업과 스타트업을 둘러싼 규제와 잘못된 정책을 바로잡는 등 왕성한 활동으로 호평을 받고있다.
그는 한국벤처기업협회를 만들었고, 수많은 후배 벤처기업가의 멘토와 물질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비록 기업가로는 실패했지만, 지금은 가장 창업경험이 풍부한 멘토이자, 정책 오거나이저로 왕성한 활동을 하는 등 좋은 평가를 받고있다.
한 관계자는 “이민화 이사장만큼 사심없이 담백하게 후배를 지도하고 도와주는 멘토도 드물다”면서 “비록 창업한 회사는 떠났지만, 이민화 이사장은 지금 현정권 창조경제활성화에 지대한 역할을 하고있는 것은 분명하다”고 평가했다.
주말SNS을 후끈 달군 이민화 전 메디슨 회장의 몰락기사는 스타트업, 벤처산업계에 많은 교훈과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작은 성공에 취해 유혹에 넘어가지 말고 본질에 충실해야 하는 기업가정신의 ABC를 새삼 일깨워준 주말 SNS 메디슨 기사 파동이다.
이민화 이사장은 85년,카이스트재직중 카이스트출신 7명과 메디슨을 창업한 1세대 벤처기업가다. 30여개 계열사를 거느릴만큼 성장했지만, 벤처거품이 꺼지면서 부도를 맞고 실패한 벤처기업가로 남게됐다.
95년 벤처기업협회 설립을 주도했고, 2005년 벤처기업특별법 제정, 코스닥설립, 스톡옵션제도 도입 등 수많은 벤처지원정책을 주도적으로 제안해 제도화한 역할을 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