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별세하면서 25일,26일 국내외 언론은 “한국 재계를 대표하는 큰 별이 떨어졌다”는 부음기사와 함께 그의 업적을 기리는 성과를 앞다퉈 보도했다.
그리고 ‘포스트 이건희’시대를 맞아 삼성그룹 이재용 부회장앞에 놓인 현안 난제들을 분석하는 기사를 쏟아내며 이재용 부회장이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야 하는 무거운 과제를 안게 됐다는 전망을 쏟아냈다. 국내외 언론은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경우 삼성전자를 글로벌 챔피언 1등기업으로 일궈낸 경영성과만으로도 세계 최고 수준의 기업가로서 평가받을 만하다고 분석한다.
이건희 회장은 87년 고 이병철 선대 창업주 별세 후 2대 삼성그룹 회장으로 취임, 당시 10조원대이던 삼성그룹 매출액을 2018년기준 387조원, 39배로 늘렸고, 당시 매출이 2조2000억원대에 불과하던 보잘것없던 전자부품회사 삼성전자를 불과 28년만에 연매출 220조원대로 무려 100배이상 성장시킨 놀라운 경영성과를 이룬 바 있다.
하지만 기업가 고 이건희 회장을 평가함에 있어 이런 삼성그룹의 외형적 경영성과보다 더 중요한 인사이트를 삼성그룹에 남긴 것으로 분석된다. 무엇보다 고 이건희 회장이 삼성그룹에 남긴 최고의 유산은 바로 ▶부패 비리없는 기업문화 라는 게 삼성그룹 전∙현직 출신 임원들의 공통된 평가다.
이와 함께 재계는 고 이건희 회장이 후계자 이재용 부회장에게는 삼성전자를 필두로 한 거대 그룹 삼성의 지배구조를 물려준 것 못지 않게 이학수 전 부회장을 한순간에 퇴진시킨 게 최고의 ‘신의 한수’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 고 이건희 회장의 신의 한수는 ‘삼성그룹 2인자 이학수 부회장의 퇴출’
고 이건희 회장이 별세하자 언론이 ‘이건희 회장 일대기’와 그의 탁월한 경영성과,이재용 부회장의 난제 등을 쏟아내고 있지만,재계는 말년에도 발휘된 고 이건희 회장의 놀라운 인사이트에 감탄사를 쏟아내고 있다.
재계 고위관계자는 고 이건희 회장이 2014년 5월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지기 직전인 2013년께 삼성그룹 이학수 전부회장을 전격 퇴출시킨 게 이재용 부회장 체제를 연 ‘신의 한수’였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
주요 그룹 고위관계자들은 만약 고 이건희 회장이 발병전까지 이학수 부회장체제를 유지한 채 2014년 5월 쓰러져 6년간 병상에 누워있다 별세했더라면 지금의 삼성그룹 지배구조는 이재용 부회장 후계구도 측면에서 치명적 문제가 발생했을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이학수 부회장은 선대 창업자 이병철 회장 체제시절 제일모직 경리사원으로 출발했던 회계 재무전문가로, 이건희회장 체제 이후 삼성그룹의 2인자로 불리던 실세 중의 실세로 불리던 인물이다. 이건희 회장의 자금관리는 물론 그룹전체 자금을 좌지우지해온 인물이다.
실제 삼성그룹 주요 계열사 CEO들이 신라호텔 로비에서 삼성그룹 구조본 이학수 본부장을 만나면 90도 인사를 하던 장면은 심심찮게 목격되기도 했다. 이학수 전 부회장은 삼성그룹의 주요 현안과 인사,심지어 이재용 부회장의 승계 및 지배구조 등 모든 것을 총괄해온 그야말로 이건희 회장의 심복이자 오른팔이었다.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이건희 회장은 최태원 SK그룹회장이 5000억원대 선물투자로 인한 배임횡령혐의로 4년간 감옥생활을 하는 동안 당시 손길승 SK그룹 부회장이 그룹 전체를 자신의 인맥으로 채우며 그룹경영 지배권을 위협하는 사태를 목격하고 전격적으로 이학수 전 부회장을 퇴출시킨 바 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이학수 전 부회장의 퇴출은 마치 이건희 회장 스스로 지병으로 쓰러질 것을 예상이라도 한 듯한 타이밍에 이뤄져 놀라운 ‘신의 한수’였다는 게 그룹내 분위기다. 실제 이학수 부회장은 삼성그룹 재직시 조 단위가 넘는 부를 축적한 것은 물론 삼성그룹 경영지배권에 상당한 관심과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어 이재용 부회장 체제에 최대 걸림돌이 될 것이란 전망이 조심스레 제기되기도 했다.
고 이건희 회장이 ‘SK그룹 손길승 부회장 쿠데타’사건을 통해 ‘이학수의 장기집권 가능성’을 간파하고, 누구도 예상치 못한 전격적인 ‘이학수 부회장 퇴출’을 단행한 것이다. 이재용 부회장 입장에선 놀라운 타이밍이 아닐 수 없다.
실제 최태원 SK그룹회장은 구치소 수감 중에 박정호 현 SK텔레콤 CEO로부터 손길승 부회장의 과도한 경영개입 움직임을 보고받고 은밀히 손길승 부회장 제거작업을 진행한 바 있다.
박정호 현 SK텔레콤 사장은 당시 최태원 회장에 수시로 보고하면서 외부 전문회사를 통해 손길승 부회장의 횡령배임 등 경영비리를 캔후 관련 자료를 수사기관에 넘기고, 모 여성과의 부적절한 사생활이슈를 터트리면서 손길승 부회장의 퇴임을 이끌어낸 바 있다. 박정호 대표에 대한 최태원회장의 신임이 남다른 것은 ‘손길승 쿠데타’사건 때문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고 이건희 회장에 대한 다양한 성과평가 속에 후계자 지배구조를 위해 평생 자신의 금고지기이자 심복이던 이학수 전 부회장을 잘라낸 대목은 그의 총수로서의 냉혹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 초일류 기업 삼성전자의 경쟁력, 이건희 회장이 남긴 최고의 유산은 비리없는 시스템
언론에 쏟아지는 이건희 회장의 놀라운 경영성과 못지 않게 고 이건희 회장이 삼성그룹과 이재용 부회장에 남겨놓은 최고의 유산은 바로 국내 재벌그룹과는 확연하게 비교되는 기업내부 부패비리가 자리 잡지 못하도록 구축해놓은 철저한 감사시스템이다.
이건희 회장이 남긴 최고의 유산은 삼성전자의 매출을 28년여만에 220조원대로 100배이상 키운 외형적 성과못지 않게 상대적으로 부패비리가 없는 삼성그룹만의 기업문화를 만들어낸 냉혹한 시스템 구축에 있다.
20년여전부터 삼성그룹이 현대,LG,SK그룹 등 국내 10대그룹과 대비되는 결정적 차이는 바로 부패비리를 근절하는 내부 감사시스템에 있었다. 걸리면 일벌백계하는 이건희식 부패비리 척결이 바로 삼성전자의 핵심경쟁력 토대가 됐다는 게 고위임원 출신들의 한결같은 분석이다.
실제 이건희 회장 체제후 삼성그룹은 학벌모임이나 고향모임 등 학연∙지연,혈연관계 모임 자체가 사라진 바 있다.이를 테면 같은 대학 후배라고 명절에 선배 임원집에 인사하러 가는 관행이 지배적이던 80년대에도 삼성그룹은 이런 행위를 하다 적발된 직원과 임원은 가치없이 해고하는 냉혹함을 유지했다.
부품을 납품하는 협력사 관리 역시 삼성그룹은 80년대초부터 타그룹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부품 등 납품업체를 관리하는 팀이 납품사 미팅후에는 감사팀이 반드시 협력사를 추가 방문,비리혐의를 확인하는 시스템을 운영한 것이다.이 때문에 삼성전자 협성회 소속 부품납품사 업무담당 직원들은 납품회사 방문시 점심조차 얻어먹지 않고 자신의 돈을 식사를 해결했던 관행은 오래된 유명한 일화다.
금액이 적더라도 걸리면 바로 퇴출시키는 일벌백계식 감사시스템은 삼성그룹 조직원들에게 ‘소탐대실의 위험을 감수하느니 절대 향응이나 뒷돈을 받지 않는다’는 문화를 만들어냈고,그런 부패비리없는 납품관행이 삼성전자 경쟁력의 보이지 않는 경쟁우위 요소였던 것이다.
이 때문에 삼성그룹은 여타 4개그룹과는 달리 경영진 친인척이나 임원 등 개인적 연줄로 납품업체로 선정되는 비리가 거의 없었고, 철저히 품질과 납기,가격으로 납품회사를 선정하고 유지하는 투명한 하청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런 투명한 하청관계가 결국 새로운 혁신적 기술과 기능을 제공하는 협력사의 경쟁력으로 이어졌고 오늘날 삼성전자가 세계 초일류 글로벌 챔피언이 된 핵심적 시스템으로 평가된다.삼성전자가 핵심부품을 납품하는 협력사에 대한 대금결제관행 역시 어음없이 현금으로 바로바로 결제해주는 관행 역시 여타 그룹과는 이미 20년여전부터 차이를 만들어낸 요소다.
“삼성전자의 경우 결제 하나는 정말 완벽합니다.그래서 사실 삼성전자와 일하려고 목숨거는 겁니다. 납품하면 결제는 100% 해줍니다” 고 이건희 회장의 인사이트는 구조본을 통해 각 계열사 핵심 경영진과 기술진을 지속적으로 압박하는 이른바 ‘쪼는 능력’못지 않게 스스로 모든 완제품을 해부해 자사 제품의 문제점과 개선점을 누구보다 명확히 이해하는 보기드문 ‘오타쿠’정신에서 출발한다.
익히 알려진 ‘마누라와 자식빼고 다 바꾸라’는 이건희 회장의 푸랑크푸르트 발언은 단순한 재벌총수의 지시가 아니라 이미 문제해결을 위한 방법론을 스스로 배우고 깨치고 터득한 후 주문한 경영방침이었다.
국내 주요 언론은 수십년간 이건희 회장이 승지원에 머물려 출근하지 않는 은둔의 경영자로 묘사한 바 있지만,그는 구조본을 통해 세계 굴지의 연구소와 세계적 컨설팅회사로부터 끝없이 보고서를 받아 연구하고 공부한 집념의 경영자였다. 모르면 해당분야 세계 최고 전문가를 불러 개인 강의를 받을만큼 이건희 회장은 스스로 터득한후 집요하게 경영진을 압박하는 스타일의 소유자였다.
■ 이재용 부회장에게 남겨진 숙제
고 이건희 회장의 별세로 이재용 부회장의 지배구조변화와 ‘포스트 이건희’체제에서의 이재용 부회장에게 남겨진 난제들에 대중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의 가장 큰 부담은 박근혜정부 시절 국정농단 사건이 촉발된 2016년 말부터 수년째 이어지고 있는 국정농단 수사·재판 사건이다. 사법 리스크를 어떻게 극복할지가 최대 현안으로 분석된다.
이학수 전 부회장 주도로 진행돼온 삼성SDS와 에버랜드 주식 등을 통한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과도한 지분가치 상승을 통한 편법 승계는 지금까지 이재용 부회장의 발목을 잡는 아킬레스건이 되고 있다. 당장 10조원대의 상속세와 은행법 입법예고로 인해 삼성물산 지분을 일부 매각해야할 경우 삼성전자 등에 대한 순환출자 지배구조를 어떻게 유지할 지, 새로운 신사업 발굴 등이 그에게 남겨진 최대 현안으로 보인다.
이건희 회장이 보유한 삼성전자, 삼성SDS, 삼성물산, 삼성생명등 주식의 가치는 총액은 18조2000억원대로, 부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 관장과 이재용 부회장, 이부진,이서진 등 자녀들이 내야 하는 상속세는 대략 10조원대. 이부진 호텔신라 대표,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등 두 동생에 대해 어떻게 계열사를 분리 독립시킬지도 과제다.
수조원대의 비자금조성과 세금 포탈 및 계열사 지분을 싸게 매각후 지분가치를 높이는 편법승계 상속, 2005년 7월에 터진 이른바 ‘안기부 X파일’사건, 2011년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성매매 사건 등은 고 이건희 회장체제에서의 오점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당시 X파일 사건은 97년 당시 안기부가 불법 도청한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과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의 대화 내용이 공개된 사건으로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바 있다. 삼성이 대선 후보들에게 불법 대선자금을 건네고 검사들에게 ‘떡값’ 명목으로 돈을 건넸다는 내용이 담겨 큰 파문을 남겼다.
2007년엔 김용철 전 법무팀장이 삼성 비자금 조성 의혹을 폭로,특검을 통해 이 회장이 임직원 명의의 차명계좌 1100여 개를 이용,비자금 4조 5000억 원을 관리해온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2009년,변칙 상속 논란이 제기돼 온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 헐값 발행, 2011년에 터진 성매매 사건도 오점으로 남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 이건희 회장은 국내 100여년 재계 역사는 물론 글로벌 경제계를 통틀어서도 길이 남을, 혁혁한 경영성과를 만들어낸 불세출의 기업가로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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