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웨이에 이어 틱톡이 미국내 사용이 금지되는 등 중국계 거대 IT기업이 격화하는 미∙중 무역갈등의 희생양이 되고 있는 가운데 영국의 모바일 반도체 설계회사 암 홀딩스(ARM Holdings)의 중국 합작법인 ‘ARM차이나’가 미중 무역갈등의 새로운 복병으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미 행정부는 중국 정부가 ‘암차이나’를 통해 중국내 파트너사에 라이선스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모바일 반도체 IP의 90%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ARM’의 핵심기술을 빼낼 가능성에 주목하면서 ‘암차이나’가 ARM매각의 또다른 변수가 되고있다.
이와 관련 암 홀딩스의 중국 합작기업 암 차이나 회장이자 최고경영자(CEO)인 앨런 우(우슝앙·吳雄昻)의 해임을 둘러싸고 미∙중간 미묘한 분위기가 감지돼 다양한 해석을 낳고 있다. 특히 암차이나는 지난 6월 9일 이사회를 열고 앨런 우 회장이 별도 회사를 세워, 암차이나와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상황이 발생했다며, 우 회장을 전격 해임했다.
이사회는 “우가 회사와 자신의 이익이 상충하는 상황을 공개하지 않는 등 심각하게 부적절한 행동을 했다”면서 “사임권유를 받아들이지 않아 해임했다고 밝혔다. 우 회장의 해임에는 암 차이나의 주요 주주인 호푸 인베스트먼트도 찬성했다.
문제는 이사회가 우회장을 해임한 지 이틀 만에 암차이나는 SNS 위챗 공식사이트에 “암 차이나는 중국 법률에 근거한 독립한 회사로, 우 회장은 회장직과 CEO직을 모두 지속할 것”이라며 “모든 업무가 평소처럼 진행돼 중국내 고객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발표, 정면 반발하고 나섰다는 점이다.
이사회의 경영진 교체 결정에 대해 회사가 정면 반발한 상황. 결국 우 회장의 거취가 새로운 이슈로 떠올랐고, 이번 건은 격화하는 미∙중 무역갈등 속에 온갖 해석과 억측이 쏟아지고 있다. 미국 시민권자인 우 회장은 스탠퍼드대 졸업 후 2014년부터 암 홀딩스에서 중국 사업을 이끌어왔고, 2018년 암 차이나 설립 직후부터 회장과 CEO를 맡아온 인물이다.
■ 암차이나 앨런 후 CEO해임을 둘러싼 다양한 해석
앨런 우 회장 해임을 둘러싼 이사회 입장은 일단 앨런 우 회장 개인비리 혐의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이는 암홀딩스와 합작법인 암차이나 주주인 호푸 인베스트먼트가 우 회장 해임을 결정한 점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하지만 암차이나가 이사회 결정 이틀만에 반발한 대목은 상황과 반도체 생태계에서 핵심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암홀딩스의 위상, 미·중 무역갈등이 격화하는 상황과 맞물려 다양한 해석을 낳고 있다. 우선 앨런 우에 대한 이사회 해임에도 불구하고 미 행정부는 암차이나 지분 구조상 중국 측이 51%, 외국계가 49%를 보유한 대목에 주목하고 있다.
실제 미 정부는 암차이나가 중국 측 지분 51%를 내세워 경영독립과 자체 반도체IP기술력 개발명목으로 암의 모바일 반도체 핵심기술을 빼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입장이다. 미 정부는 암의 모바일 반도체 기술 라이선스를 중국 파트너에 판매하는 과정에서 핵심기술 유출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실제 암 차이나의 기술 개발 분야는 점점 커져 2018년 4월 말 기준 341명이었던 직원규모가 최근 600명까지 늘어났다. 이 중 500명이 기술개발 인력인 것으로 알려졌다. 암차이나 CEO해임을 둘러싼 논란이 단순한 내부 갈등에 그치지 않는 것은 암이 반도체시장에서 차지하는 막강한 지위 때문이다.
일본 소프트뱅크 그룹이 대주주인 암은 스마트폰 프로세스 중추를 담당하는 ‘코어’ 설계 IP를 독점, 전 세계 모바일 반도체 설계 시장 90% 점유율을 확보한 사실상 독점 회사다. 실제 화웨이가 지난해 9월 세계 최초로 5G통합 칩 ‘기린990’ 공개했지만,암 신형 모바일 최신 IP가 아닌 구형 IP를 채택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망신을 산 바 있다. 화웨이가 미 정부 블랙리스트에 오른 후 암의 신형 IP를 쓸 수 없는데 따른 결과였다.
반도체 굴기를 내세운 중국 입장에서는 화웨이 ‘기린990’칩 사건을 계기로 암의 핵심 모바일 반도체칩 기술에 목을 걸 수밖에 없는 처지다. 실제 화웨이로서는 인텔 등 미국 기업에 더이상 반도체를 공급받을 수 없기 때문에 암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자체 반도체를 개발하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인 셈.
미국이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견제하는 상황에서 암은 중국에 더욱 중요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암이 영국계 회사지만 미국의 절대적인 영향력 아래 있다는 점도 암차이나가 새로운 미∙중 무역갈등의 회오리속으로 빠져들 가능성을 크게 하고 있다.
암 역시 상당수 미국의 원천기술을 활용하고 있고 미 반도체 생태계와 밀접한 관계에 있다. 투자업계는 암과 미국 반도체생태계간 관계를 고려할 때 미 행정부가 암과 중국의 관계 단절을 위해 충분한 압력을 가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암 차이나의 최대 주주는 중국계 펀드. 암 홀딩스 최대 주주인 소프트뱅크는 2018년 6월 암 차이나를 설립하면서 지분 51%를 중국투자(CIC), 실크로드 펀드, 중은집단투자, 선예집단 등 중국 정부펀드 참여 컨소시엄에 매각한 바 있다.
■ CEO해임, 암차이나 “받아들일 수 없다”독자행보 선언
암차이나가 이사회의 앨런 우 CEO해임에 정면 반발하며 내세운 명분은 암이 중국 합작법인의 정상적인 영업을 방해하고 있다는 것. 이를 토대로 독자행보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중국 매체 시나는 7월 29일자로 암차이나는 CEO해임을 반대하는 공개서한을 통해 합작 회사는 ARM의 기술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중국 시장에서 ARM의 영구적이고 독점적인 제품 판매 권한과 독립적인 연구 및 개발 권한을 획득했다는 점을 집중 부각시켰다고 보도했다.
암차이나는 독립적인 연구 개발을 통해 2년 만에 인공 지능, IoT CPU 코어, IoT 플랫폼 등을 출시,양산했다며, 지난해 합작 투자 수익은 매년 약 50%씩 증가, 암홀딩스 글로벌 IP 비즈니스의 27%와 매출 성장의 100%를 암차이나가 차지했다고 주장했다.
암차이나는 이렇듯 막 비상하려는 상황에서 지난 6월 초 혼란스러운 ‘회장 해임’사건이 발생했다며, 암홀딩스에서 사람을 파견하기 시작했고, 기존 계약을 수정 또는 취소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고 ‘경영간섭’을 주장했다.
암차이나는 이러한 긴급 상황에서 주주 분쟁을 빨리 해결하고 암차이나가 독립적으로 계속 개발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주목할 대목은 암차이나가 공개한 서한에는 ‘암차이나는 중국 정부가 통제하는 합작 회사로, 중국 법률을 준수하고 중국의 사회적 책임을 이행해야 한다’고 주장한 대목이다.
힌리치 재단 알렉스 카프리 연구원은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기고한 글을 통해 “미국 정부가 암과 중국의 관계 단절을 위해 충분히 압력을 가할 수 있다”고 밝혀 향후 암차이나를 둘러싼 미∙중 무역갈등이 또 한번 첨예하게 맞붙을 것으로 전망했다.
한편 중국 동영상 공유 플랫폼 ‘틱톡’ 역시 미중 무역갈등으로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미 정부가 이용자 정보 유출 의혹을 제기, 미국 내 사용금지를 선언하자, MS의 미국 틱톡 사업 지분 인수협상이 결렬된 것.
스파이앱이란 오명속에 틱톡이 ‘제2의 화웨이’로 미∙중 무역갈등의 희생양이 될지 주목거리다. 모바일반도체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혈안인 중국 정부의 반도체 굴기, 암과 중국 정부를 떼어놓으려는 미국의 전략 속에 암차이나 역시 어떻게 정리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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