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이 스타트업과 벤처기업에 직접 투자를 할 수 없다는 게 말이 됩니까? 구글 애플 텐센트 등 글로벌 IT기업의 경우 스타트업에 대한 직접 투자를 통해 신성장동력 확보에 총력전을 펴는 마당에 이 무슨 구시대 유물 같은 규제가 있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대기업이 벤처캐피털(VC)을 설립해 직접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길이 열린다. 대기업 자금을 모아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VC는 ‘금융업’으로 국내의 경우 ‘금산분리’규제로 인해 대기업이 자체 자금을 모아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회사(CVC) 자체를 설립할 수도, 보유할 수도 없다.
즉 공정거래법상 대기업 지주회사는 CVC를 설립∙보유할 수 없는 탓에 지금껏 대기업은 벤처캐피털사를 운영할 수 없었다. 정부는 7월 중에 대기업 지주회사에 대해 일정 한도 내 직접 벤처투자를 허용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기업주도형 벤처캐피털(CVC) 제한적 보유 방안을 발표한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1일 ‘제6차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회의’에서 벤처투자 확대를 통해 벤처 생태계를 강화하기 위해 일반 지주회사가 CVC를 제한적으로 보유하는 방안을 7월 중에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정부의 CVC허용방침이 알려지자 역대 벤처생태계 정책 가운데 가장 효과가 크고 세계적 흐름에 부합하는 정책이라는 호평이 스타트업계와 벤처산업계에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공정거래위원회는 부작용이 우려된다며 금산분리법 개정 없이는 불가하다는 입장이어서 향후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정부는 금산분리 원칙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투자 효과를 끌어낼 수 있도록 제한적 범위에서 대기업에 대한 CVC를 허용한다는 입장이다. 기재부 김용범 1차관은 이날 “CVC 펀드 결성 시 민간자본 포함 여부 등 여러 방안을 검토하겠다”면서 “자회사 비율과 CVC의 영업 범위 등을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 대기업 스타트업∙벤처산업계 투자 봇물 터지나, VC들 긴장
정부의 이번 대기업 CVC참여 허용은 ‘대기업 자본의 스타트업 투자허용’이라는 측면에서 폭발적인 투자선순환 구조를 만들 것이란 긍정적 평가가 쏟아지고 있다. 우선 엄청난 사내유보금을 쌓아놓고 있는 재계는 이종 산업의 유망 스타트업 및 벤처기업에 직접 투자할 수 있는 길이 열림에 따라 이종산업간 겨예를 허물며 신성장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환영일색이다.
재계 관계자는 “그동안 대기업중심의 M&A가 활성화하지 않은 측면은 직접 투자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며 “향후 대기업 자본이 대거 스타트업 생태계에 유입되면 투자활성화 측면에서 활기를 띨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즉 앞으로 거대 유통산업,화장품산업,식음료산업, 건설산업,중장비기계산업군 대기업이 서로 다른 이업종에 투자하면서 이종산업간 경계를 허무는 것은 물론 4차산업으로의 빠른 전환과 함께 투자사업을 통해 신사업을 발굴하는 새로운 투자 패러다임을 창출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즉 향후 유통대기업, 화장품 대기업이 인공지능(AI)이나 블록체인 스타트업에 직접 투자할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는 셈이다. 기재부는 대기업 지주사에 대한 CVC설립이 허용될 경우 대규모 자금이 스타트업 생태계에 유입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기재부는 이를 통해 CVC를 통한 대기업의 스타트업 및 벤처기업 인수합병(M&A)이 활성화하고, ▶기존 VC 투자금 회수 ▶회수자금의 스타트업 재투자 ▶스타트업 창업 활성화 등의 선순환구조가 만들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재 재벌 대기업군은 지주사 체제로는 CVC 설립보유가 불가능함에 따라 지주사체제가 아닌 외부 계열사를 통해 일부 운영하고 있으며 롯데의 경우 호텔롯데 계열로 롯데액셀러레이터 등 엑셀러레이터사업에 나서고 있고, SK,LG 등의 경우 해외에 투자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 전경련∙스타트업 “대기업 벤처캐피털 허용 시급”….공정위 “불가”
전경련과 스타트업은 11일 한목소리로 국내 대기업도 구글처럼 스타트업과 벤처에 투자할 수 있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더불어민주당 김병욱·이원욱·김경만 의원 주최로 1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기업 주도형 벤처캐피털(CVC) 활성화’ 토론회에서 최성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표는 “창업 초기 이후엔 국내 자본 투자는 찾아보기 어렵다”고 호소했다.
최 대표는 “대기업 스타트업 투자는 세계적 흐름”이라며 “창업 초기에만 정부 자금 등 투자가 이뤄지고, 유니콘(기업 가치 1조 이상)이나 직전 단계로 가면 국내 대기업 자본이 거의 없다”고 토로했다.
최성진 대표는 “창업 선순환이 이뤄지려면 국내에 대규모 펀드가 있어야 한다”며 “배달의민족이 해외에 인수된 것도 5조원 짜리 기업을 사줄 수 있는 구조가 국내에 없었기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전경련 유환익 상무는 “4차 산업혁명으로 기술 수명이 짧아져, 연구개발의 기존 모델이 한계를 만났다”면서 대기업에 대한 CVC 참여를 허용해 새로운 신성장동력 확보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금산분리 규제로 대기업의 벤처캐피탈사 설립을 막는 것은 시대착오적 규제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서강대 홍대식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VC는 단순한 자금 중개가 아닌 신성장동력 산업”이라며 “대기업에 대한 CVC참여 허용은 ‘금산분리 완화’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공정거래법상 VC는 투자전문회사로, 산업 분류상 ‘금융업’으로, 금산분리규제로 인해 대기업 지주회사는 금융업을 소유할 수 없다. 즉 지주사인 SK나 LG, GS, 롯데 등은 계열사로 VC를 설립할 수 없다. 하지만 코로나19사태로 투자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스타트업이 투자받지 못하는 등 돈 가뭄이 심해지자 대기업에 대한 CVC가 본격 허용될 전망이다.
행사 주최자인 김병욱 의원과 이원욱의원은 대기업 CVC를 허용하는 내용의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이번 국회 개원 직후 각각 발의했다. 김 의원은 이날 행사에서 “금산분리에 너무 구애받지 말고 새로운 투자를 활성화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발제에 나선 국민대 김도현 경영학부 교수는 “전 세계 VC의 30%가 CVC”라며 미국 중국 등은 구글·알리바바·텐센트 등 거대 기업의 CVC가 투자를 주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이런 미·중과 달리 국내는 산업자본의 벤처 투자가 원천적으로 차단된 상태”라며 “국내 CVC가 규제로 인해 대기업들이 해외에 투자한다”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CVC를 세워야 대기업의 벤처 투자가 활성화되는 이유에 대해 “VC 운용 기간은 10년 안팎인데 대기업 임원 임기는 2~3년”이라며 “CVC 없이, 현재 대기업 의사결정이나 실적 관리 구조에서는 벤처 투자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즉 전문적인 투자회사 설립 없이는 대기업의 스타트업 투자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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