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권의 핵심 경제정책 기조인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대한 피로감이 걷잡을 수 없는 지경으로 치닫고 있다.
특히 최저임금제와 일자리 창출을 독려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이를 실행하는 각 부처 장관들의 해법은 여전히 대기업 CEO불러 독려하는 10년전 ‘올드’버전에 머물러 있는 등 현실적 대안 찾기에 잇따라 실패하고 있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최저생계비도 못 버는 저소득층에 대해 최소한의 삶의 질을 보장하자는 좋은 취지의 정책에도 불구하고 최저임금제는 생산현장 곳곳에서 갈등과 편의점주 분쟁 등 새로운 대립 관계를 만들어내며 오히려 정책효과보다는 사회적 갈등비용구조만 키우는 부작용을 양산해내는 형국이다.
특히 주 52시간 근무제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 기업 경쟁력의 핵심인 고용 유연성을 억제하는 규제정책이 쏟아지면서 일자리 창출은 커녕 거꾸로 근로자를 내보내야 하는 사업장이 속출하면서 현 정책기조가 ‘일자리 거꾸로 창출’이라는 비판성 신조어마저 등장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파장이 커지자 주무부처 중소벤처기업부 홍종학 장관이 직접 중소기업, 소상공인과의 정책간담회를 주선했지만, 사전 조율 없이 진행하면서 정부와 소상공인간 갈등만 부추키는 결과를 초래하는 등 정책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 묵묵부답 홍종학 중기벤처부장관, 왜 간담회를 요청했나요?
실제 홍 장관과 박성택 중기중앙회 회장은 16일 여의도 중기중앙회에서 최저임금제 관련 간담회를 가졌지만, 중기중앙회의 최저임금제 업종별 차등적용 요구에 대해 홍 장관은 묵묵부답으로 일관, 왜 사전조율도 없이 정책간담회를 했느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중앙회는 중소기업과 영세 자영업자들의 경우 최저임금제는 ‘기업의 생존’이 걸린 사활의 문제라며 최저임금을 업종별로 차등적용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나섰다. 중앙회는 이날 최저임금의 사업·규모별로 구분해 적용하는 방안을 제도화해줄 것을 재차 촉구했지만, 홍종학 장관은 시종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중앙회 및 중소기업계는 최저임금과 관련한 현장의 애로를 듣고 대책을 검토하자며 홍 장관이 먼저 제안해 간담회를 개최해놓고 요구사항에 대해 어떤 대안도 언급하지 않을 거라며 왜 간담회를 개최했느냐며 맹비난하고 나섰다.
박성택 중기중앙회 회장은 “올해 최저임금이 이미 16.4% 인상, 현장에서는 인건비 상승으로 1년 내내 어려운 실정”이라며 “내년에도 최저임금이 10.9% 오른 8350원으로 결정돼 중기업계가 매우 심각한 상황에 직면한 상태”라고 주장했다.
박 회장은 실제 현장의 체감도를 언급하며, 최저임금제도가 유명무실해지지 않기 위해서는 업종별, 규모별로 구분 적용해야 한다며 “(홍 장관이)적극 나서 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드린다”라고 요청했다.
최저임금 사용자위원인 김영수 이사장 역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에 대해 최저임금을 업종∙규모별로 차등 적용해야 한다며, “‘소득주도성장’의 프레임을 바꿔서 대·중소기업이 윈윈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어야 한다”며 현 정부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수정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홍 장관은 이날 차등적용에 대해 어떤 답변도 내놓지 않았으며, ‘소득주도 성장’정책의 당위성만 반복 강조해 빈축을 사기도 했다. 홍 장관은 “소득주도 성장은 최저임금 인상을 핵심 정책수단으로 하는 경제 정책”이라며 “최저임금을 빠르게 인상해 양극화를 완화하고 저소득층의 소득을 늘려 경제의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개념”이라며 원론적 발언을 반복했다.
홍 장관은 특히 “소득주도 성장론은 ‘서민지갑 빵빵론’으로 이를 부정하는 것은 서민을 지원하는 정부 정책을 부정하는 것”이라며 “서민지갑을 빵빵하게 하는 더 나은 정책이 있다면 얼마든지 수용할 것”이라며 소득주도 성장론을 반복해 언급, 중기벤처부 장관이 굳이 정부 정책기조를 부연 설명할 필요가 있느냐는 반응이 쏟아졌다.
중기업계는 “중기벤처부 장관이 지갑빵빵론만 반복할 뿐,구체적으로 어떻게 지갑을 채울지는 전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며 평가절하했다.
■ “아직도 장관이 대기업 CEO 불러 일자리 독려하다니” 10년 전 올드버전 반복하는 산자부 장관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역시 16일 기업의 애로사항을 청취한다는 취지로 국내 12대 기업 CEO초청 간담회를 개최했지만, 재계 반응은 싸늘하다. 백 장관은 “기업활동을 어렵게 하는 규제를 적극적으로 발굴, 개선해 기업을 위한 산업부가 되겠다”고 간담회 취지를 밝혔다.
이날 간담회는 문재인 대통령의 삼성 인도공장 준공식 참석에 발맞춰 정부가 재계에 일자리 창출을 압박했던 예전과 달리, 기업계 어려움을 청취하며 대기업의 협조를 이끌어 내보겠다는 취지로 준비된 이벤트였다.
이날 백 장관은 기업계 최대 애로사항으로 꼽은 근로시간 단축 제도에 대해 고용노동부와 협의해 해결책을 찾겠다고 언급했지만, 재계는 이미 정권 차원에서 확정한 정책과 관련해 산자부와 고용부 협의로 보완책이 나오겠느냐며 부정적 입장이다.
이날 백운규 산자부 장관과의 간담회에는 윤부근 삼성전자 부회장, 김준 SK이노베이션 사장, 박한우 기아차 사장, 오인환 포스코 사장, 황각규 롯데 부회장, 권오갑 현대중공업지주 부회장, 손옥동 LG화학 사장, 정찬수 GS 사장, 동현수 두산 부회장, 최선목 한화 사장, 이갑수 이마트 사장, 박근태 CJ대한통운 사장 등이 참석했다.
참석 기업은 이날 주로 근로시간 단축에 대한 애로사항들을 쏟아냈다. 재계는 특히 연구개발 인력이 많은 기업이나 계절적 인력 수요가 있는 기업, 해외 플랜트사업추진 기업의 경우 탄력 근로시간제 시행이 불가피하다며 제도허용을 요구했다.
산업부는 이에 대해 근로시간 단축과 관련한 다양한 애로사항 개선을 위해 이달부터 업종별 실태조사를 거쳐 해결방법을 검토, 고용노동부와도 협의할 계획이라는 입장이지만, 재계는 그 실효성에 대해서는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다.
재계는 이와 함께 태양광 기술 개발 등 신사업에 대한 투자와 관련해 정부의 초기 마중물 투자가 필요하고, 수소차 생태계 관련, 부생수소를 활용한 연료전지 시장의 확대를 위한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산자부는 이날 재계 애로사항을 청취해 정책에 반영한다는 취지로 간담회를 개최한다고 밝혔지만, 결국 중요한 투자나 일자리 창출의 핵심이 대기업에 있다고 보고 간담회를 통해 일자리 창출을 독려 내지 주문하려는 의도로 분석된다.
산자부는 이런 비판여론을 의식한 듯, 향후 기업과의 간담회를 정례화하고 애로사항을 정리, ‘기업애로 상황판 리스트’를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청와대 ‘일자리상황판’재연이냐는 비아냥성 비난 글이 쏟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