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앞으로 5년간 전국 250곳에 청년 스타트업(start-up)과 복합 문화시설이 모이는 ‘혁신 거점’을 조성하기로 했다. 이곳에는 청년을 위한 시세 50% 이하 창업 인큐베이팅 공간이 마련된다. 영세 상인들은 시세 80% 이하로 최대 10년간 임대할 수 있는 공공임대상가도 만든다.
정부는 28일 매년 10조원씩 5년간 총 50조원을 투입, 젊은 인재들이 모이는 혁신거점을 전국에 걸쳐 250곳을 조성하는 내용의 ‘도시재생 뉴딜 로드맵’정책을 발표했다. 90쪽에 이르는 방대한 설명자료에는 미국 시애틀 ‘아마존 캠퍼스’, 독일 ‘팩토리 베를린’ 같은 지역 혁신거점과 흡사하게 조성한다는 보랏빛 청사진이 가득 차 있다.
하지만 국토부가 발표한 이번 정책에 대해 스타트업 및 벤처산업계는 물론 도시개발전문가조차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등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는 비판여론이 쏟아지고 있다.
전문가그룹은 이미 경기도를 비롯해 전국 지자체는 물론 사무실 공유 전문업체를 중심으로 스타트업 및 벤처생태계 창업용 사무실 공간은 이미 포화상태를 넘어 공급과잉상황인 점을 지적한다. 즉 전국에 250곳을 동시다발적으로 개발, 조성할 게 아니라 3~5개만 시범적으로 조성∙운영한 뒤 그 결과에 따라 전국으로 확대하는 방안이 현실성 있는 정책이라고 일제히 입을 모으고 있다.
도심재생사업 자체가 이미 전국 지자체에서 수년전부터 동시다발적으로 진행 중인 ‘진행형 사업’으로 ‘재탕, 3탕정책’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 넘치는 창업공간, 쇠락한 지방도시에 창업공간을 만들다니?
미래창조과학부와 경기도가 지난 2016년 총 1609억원을 투입, 성남시 판교에 국내 최대규모로 설립한 창업지원 공간 ‘스타트업 캠퍼스’. 정부는 총면적 5만4075㎡에 지상 8층 건물 2개 동과 5층짜리 1개 동으로 구성된 스타트업캠퍼스에 스타트업 200여개를 입주시켜 판교를 스타트업 창업 밸리로 만든다는 야심 찬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스타트업캠퍼스는 과연 지금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현재 8층 2개동에는 스타트업이 아닌 정부산하기관들이 줄줄이 들어서 있다.
2개동 모두 2층부터 8층까지 정보통신산업진흥원(클라우드혁신센터), 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지능형ICT융합연구센터), 한국정보화진흥원(K-ICT 빅데이터센터), 경기콘텐츠진흥원(빅파이추진단), 한국인터넷진흥원(K-ICT IOT 혁신 센터),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차세대 이동통신오픈 이노베이션 랩),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SW융합클러스터센터), 국가수리과학연구소(산업수학혁신센터) 등 듣지도 보지도 못한 정부산하기관 부설 센터들이 줄줄이 들어서 있다.
심지어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은 SW융합클러스터센터와 통∙번역서비스지원실 2개 연구실을 서로 다른 층에 입주시켜놓고 있고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는 센터산하 3개기관을 이곳에 중복 입주시켰다.
이외 교육공간과 컨퍼런스홀, 오픈형 교류공간, 구내식당 등이 차지하고 있다. 정부출연연 산하기관을 제외한 스타트업 포함 민간 입주기업은 탭더모멤텀이란 액셀러레이터 외 나머지는 특허법인, 법률법인, SAP앱하우스 등이 고작이다.
1609억원의 국가 예산을 투입, 스타트업 창업공간으로 육성한다며 요란했던 스타트업캠퍼스는 그야말로 정부출연연 및 산하기관의 부설센터들이 빼곡히 들어차, 사실상 공무원이 근무하는 ‘정부청사 캠퍼스’로 돌변해 있다.
2017년 미래창조과학부와 국토교통부, 중소기업청이 판교 창조경제밸리 내 대대적인 스타트업창업 생태계를 만들겠다며 스타트업클러스터 ‘기업지원허브’를 건립, 입주할 스타트업 200개를 모집공고에 나선 바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공사를 맡은 기업지원허브는 지상 8층에 지하 2층규모로 연면적 87만9000㎡규모. 공기관이 점령하기는 이곳도 별반 다르지 않다.
중소기업청이 지난해 250억원을 투입해 전국 16개 쇠락한 전통시장에 340여개 청년점포를 세워 청년상인의 창업을 지원한다고 발표하며 대대적인 홍보에 나섰던 ‘재래시장 청년상인 창업 지원사업’.
정부 지원이 끊기자마자 청년점포들은 1년도 채 버티지 못하고 우편물과 상하수도 및 전기요금청구서만 꽂혀있는 채 폐업한 곳이 속출하고 있다. 현재 80% 이상이 문을 닫거나 정상적인 영업을 하지 못한 채 폐업수순을 밟고 있다.
정부는 여기에 지난해 12월 11일 경기 판교신도시에 ‘판교 제2테크노밸리’를 조성 2022년까지 1022여개 벤처기업이 새로 입주할 판교2밸리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기존 판교테크노밸리 북쪽에 무려 43만㎡부지에 엄청난 규모로 조성한다는 청사진을 발표한 바 있다.
사물인터넷과 인공지능,드론, 자율주행,헬스케어 등 11개 신산업분야 창업지원에 대대적으로 나선다는 계획이다. 정부 주도 스타트업 창업공간은 이미 넘치고 넘치는데다 스타트업이 입주하지 않자 준공무원이 그 자리를 메우는 기현상이 속출하고 있다. 이미 스타트업 창업공간은 넘치고 넘쳐 채우질 못하는 실정이다.
■ 국토부, 아마존 캠퍼스플랜의 문제점, “지방 쇠락한 도시에 아마존이 있나요?”
정부가 매년 10조원씩, 향후 5년간 무려 50조원을 투입하는 이번 프로젝트는 쇠락하는 지방도시 상권을 되살린다는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은 이미 청년 스타트업 창업 공간이 공급과잉 현상을 빚을 만큼 남아돈다는 점때문이다.
창업지원센터 및 전용빌딩은 서울지역에만 이미 100여개 규모로 추산되고 있으며, 위위크 등 스타트업 창업공간 전문개발업체들이 서울 도심에 제공하는 소규모 사무공간 역시 치열한 유치경쟁을 펼칠 만큼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여기에 경기도는 물론 서울의 경우 웬만한 구청조차 창업지원시설과 소규모 창업공간을 운영하는 등 현재 사무공간이 부족해 창업을 못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실비 정도의 저렴한 임대료에 회의공간, 카페 등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저가형 소호사무실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스타트업의 경우 다양한 정보취득과 투자유치를 위한 네트워킹 등이 필수인 상황에서 낙후되고 쇠락한 지방 도시에서 굳이 창업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지적이다. 국토부가 50조원대 예산을 들이는 전국 혁신거점 정책중 아마존캠퍼스 개념의 창업공간지원 사업에 다들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사람들이 버리고 떠난 휑한 쇠락한 구도시에 청년들이 들어가 창업한다는 발상 자체가 비싼 사무실을 구하기 어렵다는 현실적 문제가 전제돼야 가능한 일”이라며 “지금은 대도시에 무료나 실비개념 정도의 비용으로도 입주 가능한 창업공간이 널려있는 상황”이라며 부정적 견해를 피력했다.
한 액셀러레이터는 “아마존캠퍼스는 시애틀에 1개 있지만, 아마존이란 거대한 플랫폼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며 “이런 걸 전국적으로 250개를 만든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며 일단 전국 단위로 3~5개 정도 거점 단위별로 조성해 성과를 보고 전국적으로 확대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평가했다.
또 다른 투자자는 “청년창업의 경우 경영 등 사업노하우가 현저히 부족하기 때문에 다양한 경영지원과 투자자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환경에 노출되는 게 매우 중요하다”면서 “낙후된 구도심은 이런 측면 때문에 활성화하기까지 상당한 시행착오와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정부가 고령화가 진행된 도심이나 탄광촌 등 낙후된 지역도시를 중심으로 창업지원에 나선다고 해도 정부 예산지원이 1년이상 지속되기 힘든 점 때문에 설령 쇠락한 지역에서 청년들이 창업에 나선다고 해도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매우 제한적이어서 일회성 이벤트 자금지원으로 끝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지적이다.
■ 재탕, 3탕 도시재생 뉴딜사업,“도시재생 사업, 국토부가 뒤늦게 왜?”
요즘 각 도청이나 시∙군청에는 도시재생업무를 전담하는 ‘도시재생과’가 없는 곳은 거의 없다. 강원도의 경우 지난해 이미 춘천 문화마을과 동해 책방마을, 태백 탄탄마을, 강릉 옥천동을 도시재생 뉴딜 시범사업 지구로 선정, 이미 추진 중이다.
강원도는 346억원의 예산을 투입, 도심 공동화가 심화한 옥천동 일원 17만8천810㎡를 2022년까지 중심시가지형으로 개발키로 했다. 일자리 창출을 위해 창업지원센터와 코워킹 센터를 설립하고,골목경관 개선사업으로 돌담길 조성, 골목상권 거점 조성 등에 나선다.
강원도는 동해시 동호지구에는 187억원을 투입하고, 지역경제 중심지였던 장성광업소 폐광에 따른 지역공동화 현상 해소하기 위해 올해부터 449억원을 들여 2021년까지 탄광과 문화예술을 연계한 주거지 재생지역으로 발전시킨다는 계획이다.
춘천시 역시 도시재생에 한창이다. 487억원을 투입, 2021년까지 인구유출이 극심한 약사리 문화마을을 일반근린형으로 도시재생에 나선다. 춘천시의 옛 도심인 소양로 번개시장 일대 역시 도시재생센터를 출범, 개발키로 했다. 춘천 번개시장 역시 1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커뮤니티센터, 청년창업공간, 문화예술촌, 게스트하우스, 걷고 싶은 거리 등을 조성한다.
경기도 구리시 역시 지난해 11월 경기북부지역 지자체 중 처음으로 도시재생사업을 지원하는 조례를 제정, ‘구도시 재생사업’에 시동을 걸었다.
■ 국토부 플랜
국토부의 이번 정책은 지방 중소도시의 경우 인구감소와 고령화로 도시 소멸 위기까지 대두되는 상황을 해소하기 위한 정책. 도시재생 뉴딜 사업은 국가적인 문제인 도시 쇠퇴에 대응하기 위한 프로젝트라고 국토부는 설명한다.
국토부는 매년 10조원(재정 2조원·기금 4조9000억원·공기업 투자 3조원)씩 5년간 50조원을 투입, 전국 500곳 이상의 낙후지역을 되살리기로 했다. 이를 위해 지난해 12월 도시재생 뉴딜 시범사업 지역 68곳을 선정한 바 있다.
정부는 이를 위해 ▶삶의 질 향상 ▶도시 활력 회복 ▶일자리 창출 ▶공동체 회복 및 사회 통합의 목표를 구현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벌써부터 그 실효성에 강한 의문이 제기되고 재탕 논란까지 일고있다.
결국 해외 화려한 성공사례를 총동원한 매머드급 정책이지만, 예산확보를 위해 졸속으로 마련한 정책이란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실효성에 강한 의문이 제기되기 때문이다. 스타트업 창업생태계에 국토부가 50조원대 예산을 쏟아부어 나설 게 아니라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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